풀꽃의 짧은 이야기

짧은 이야기 36 / 자금우

풀빛세상 2013. 2. 22. 17:25

 

 

  

 

설중 자금우를 무척 찍고 싶었습니다.

하얀 눈밭에 바알간 열매와 초록의 이파리.... 상상만 해도 행복해집니다.

그날 실컷 눈에 담고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날 아침 아내는 비행기를 타고 육지에 다녀올 예정이었지만

갑자기 쏟아져 내린 폭설에 차를 움직이지 못하여 취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눈이 오면 애들은 마음이 들뜨게 되고, 덩달아 강아지들도 폴짝거리게 되겠지요.

그렇지만 어른들은 시큰둥해지면서 출근길을 걱정하게 됩니다.

어린애들처럼 마냥 즐거워할 수 없는 것은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 때문입니다.

 

 

이런 날 저는 철없는 아이마냥 마음이 붕붕 들뜨면서

설중 복수초를 볼 수 있을까?

설중 동백을 한 컷이라도 찍을 수 있을까?

어디로 가면 좋은 모델이 있을까, 길은 미끄럽지 않을까? 

함께 가자고 유혹하는 전화는 오지 않을까....  

머리 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곰곰 생각해 봅니다.

참 유치한 어른입니다. 어른답지 못한 어른이라고 해야겠지요.

더 바쁘고 중요한 일도 많을 것 같은데도

이런 일들을 내밀어 치우고 마음부터 먼저 밖으로 내달립니다.

속으로는 이것은 자유가 아니라 무책임이야 스스로를 꾸짖으면서요.

 

 

이제 소원풀이를 했으니 미련은 없을 듯 합니다.

훗날 또 이런 기회가 찾아오면 그때에도 마음이 붕붕 들뜨게 될까요?

어쩌면 마지막 그날까지 철없는 어른으로 살아야 할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