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의 짧은 이야기 222

붉은 동백꽃

하늘이 잔뜩 찌푸렸다. 낮게 깔린 하늘은 인상 팍팍쓰며 아무런 말이 없는데 공연히 나만 두려움에 떨고 있는 걸까. 낮불을 밝혀 꼬물거리는 글자와 함께 들앉은 작은 방이 나의 우주 나의 세상이 된다. 하늘은 높고 넓고 어떤 이는 무한이라 어떤 이는 영원이라고 하더라만 나의 잰걸음으로는 한 뼘도 다녀볼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더 많이 슬퍼해야겠다. 나는 땅 위의 존재, 땅의 먼지라고 배웠다만 어쩌면 하늘에서 내리는 하얀 눈에 묻은 거뭇한 흔적일지도 몰라. 거 있잖아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말이. 그 전에 할 일이 있을거라며 얼마나 두리번거렸는지 몰라. 하늘은 높고 땅은 넓고 해 뜨는 곳은 분명 저기인데 난 찬 겨울의 땅에 누운 붉은 동백꽃 한 잎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