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속의 이야기

풍경 속의 이야기 26 / 모래가 그리는 그림

풀빛세상 2012. 11. 29. 00:01

 

 

 

 

 

모래 위에 지은 집, 모래로 쌓은 성, 모래 위의 발자국.... 헛됨, 허무성, 잠시성을 뜻하는 내용들이겠지요. 바닷물이 드나드는 고운 모래밭에 그림이 그려졌습니다. 찰삭거리는 파도와 눈치 보며 살짝 살짝 스쳐가는 바람이 만들었겠ㅈ;요? 그 중에서 몇 컷을 찍어 보았습니다. 앙상한 가지만 쭉쭉 뻗어 올린 것이 박수근 화백의 그림에 나오는 나목들을 연상시키는 듯 합니다. 잎은 떨어지고 가지만 남았지만 새 봄을 기다리는 마음에는 새 희망이 숨쉬고 있었습니다. 

 

이 순간이 지나면 파도와 바람이 그려놓은 모래 그림들은 사라지게 될 것이요, 심심해진 파도는 또 다른 그림을 그렸다가 지우게 되겠지요. 그렸다가 지우고, 지웠다가 다시 그리고.... 언제까지 반복할까요. 이것이 사랑이라면, 이것이 그리움이라면, 이룰 수 없어 애태우는 사랑이요 그리움이 되겠지요. 그렇지만 바다의 모래밭이 생겨난 이래 오늘날까지 그리고 먼 훗날 그 바다의 모래밭이 사라질 때까지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하고..... 바다는 늘 사랑과 그리움만 반복하게 되겠지요. 이것을 허무라고 해야 하나요, 아니면 영원이라고 해야 하나요. 

 

시간은 무엇이며 영원은 무엇일까요. 순간 순간 찰랑거리는 파도가 무한반복 되는 것이 영원일까요.

바닷가 잘디잔 모래알을 세고 또 세어도 끝이 없어 주저앉는 것이 영원일까요. 어떤 분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시간은 시간이요 영원은 영원이다. 

시간을 아무리 늘어뜨려도 그것은 시간일 뿐이지 영원은 아니다. 


시간의 차원이 따로 있고 영원의 차원이 따로 있다는 뜻이겠지요. 시간은 땅에 속하고 영원은 하늘에 속하기 때문에, 이 둘은 서로 다른 차원에 속한다는 뜻 같습니다. 인간은 시간이라는 덫에 걸려서 허우적거리며 살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어떻게 하면 시간의 허무성에 갇혀 있는 인간이 영원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이것을 해탈이라고 해야 하나요. 구원이라고 해야 하나요. 아니면 철학자들의 용어를 빌어 초월이라고 해야 하나요.

  

이것은 하나의 질문입니다. 나는 답을 찾았노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답은 영원 속에 계신 그분만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나는 그분이 만들어 놓으신 바닷가의 모래밭에 그려진 그림 속의 모래 알갱이보다 더 작은 존재일 뿐입니다.

 

모래 밭에 한 그루 나무가 그려졌습니다.

 

고목 곁가지에 싹이 나서 자란 걸까요?

이것이 나무라면 겨드랑이가 가려웠을 것 같습니다.  

 

산 너무 산촌에는 무엇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