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172 / 둥근배암차즈기

풀빛세상 2014. 7. 8. 15:41

 

 

 

 

 

 

차즈기라는 식물이 있습니다. 쌈채소로 사용되는 짙은 자주색의 들깨라고 생각하면 되겠지요.

배암차즈기라는 야생식물이 있습니다. 앞에 배암이라는 접두사는 뱀을 뜻하며, 작은 꽃의 모습이 혀를 날름거리는 뱀을 연상시킨다는 뜻이 있지만, 자세히 확대하여 보지 않으면 평범하면서도 귀여운 풀꽃이지요. 자주색에 가까운 보라색의 꽃이 모여서 피게 됩니다.

참배암차즈기라는 풀꽃도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제법 큰 꽃이 노란색으로 피며, 보기에 따라서는 흉측한 듯 보이기도 합니다.

소개하는 꽃은 둥근배암차즈기입니다. 잎이 둥글다는 뜻이요, 흰색의 작은 꽃이 피게 됩니다. 배암이라는 단어가 들어있어 무서울 것 같지만 너무 너무 귀엽기만 합니다. 이꽃을 들여다보느라 잠시나마 정신줄 내려놓게 됩니다.

 

사연이 있지요.

마당에 늘어놓은 화분에 초대하지 않은 손님들이 가끔씩 찾아들게 됩니다. 대부분 잡초라고 천하게 여기는 풀꽃들이기에 그때마다 뽑아버리게 됩니다. '저것들도 풀꽃들인데, 꽃이 피면 얼마나 예쁘다고' 이렇게 생각하며 머뭇거리게 되면 옆에서 가만 두지 않습니다.

여봇, 저렇게 지저분해서 어떡해요. 풀꽃 하나를 보면서도, 야, 예쁘다고 하는 당신의 높은 뜻을 다른 사람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어요. 빨리 정리해요.

잔소리를 하며 타박하는 아내의 손은 어느새 풀들을 뽑아내고 있지요.

아, 여보, 여보, 그것 좀 놔두면 안 돼. 제발 가만히 둬. 내가 알아서 할께.

사정하기도 하고, 협박하기도 하고, 언성을 높이기도 하지만, 아내 역시 전혀 밀리지 않습니다.

 

대충 관리하며 내버려둔 화분이 있습니다.

백량금이 심어졌고, 곁에는 요즘 흔하게 볼 수 있으며 사랑초라고 불리기도 하는 자주괭이밥도 두어 뿌리 옮겨놓았지요. 그곳에 키가 껑충한 대가 하나 올라왔습니다. 어디서 산박하 씨앗이 날아왔는가? 뽑아버릴까? 에이 내버려두자. 가을에 집마당에서 산박하를 볼 수 있겠지뭐.

 

엊그제 주룩주룩 내리던 장대비가 그친 후 하얀색의 자잘한 꽃들이 보였습니다.

어~ 귀엽다. 예쁘네. 이름이 뭘까? 둥근배암차즈기였습니다.

배암? 아무리 살펴보아도 무섭기는 커녕.... 그런데 확대해서 보니 뭔가 앙~ 하면서 깨물러 올 것 같기는 하네요. 에고 무서워... 엄살이라도 부려야 할 것 같습니다. 

 

마당의 풀들을 정리하면서 가끔씩 생각해 봅니다.

귀하다는 것과 천하다는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

나 역시 누군가의 기준에 의하면 귀한 인생이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많고 많은 평범한 사람들 중의 하나에 불과합니다. 어느날 하늘 그분의 부르심을 받게 되더라도, 땅의 흔적은 '덧없음'이라는 말로서 정리되겠지요. 그동안 수없이 뽑아버린 마당의 풀들과도 같이요. 그렇지만 어쩌다가 남겨놓았던 풀꽃에서 우연치 않은 반가움을 만나듯, 제 인생도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되었으면 합니다.

 

마당의 작은 풀꽃 하나도 소중히 여기며 쓰다듬어 주는 풀빛세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