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169 / 갯장구채

풀빛세상 2014. 6. 9. 19:15

 

 

  

 

우리 민족을 한의 민족이요 백의의 민족이라고 합니다.

백의의 민족이란 착하고 평화를 사랑하며 이웃을 침략하지 않았다는 좋은 의미가 있을 것이요, 한(恨)의 민족이라는 한 많은 민족, 억눌린 것이 많은 민족이라는 뜻이겠지요. 특별히 유교의 엄격한 윤리와 도덕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여인들은 억눌렸고, 그 억눌림이 한이 되고 옹이가 되어 마음 깊은 곳에 박혔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배웠습니다. 우리 민족은 한의 민족이요, 우리의 가락도 한스럽고, 그래서 우리 민족의 색은 흰색이요, 무채색이라고 교과서에서 배우고 익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느 순간부터 그렇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네요. 또 다른 한켠에서는 우리 민족의 정서를 끌어가는 것은 풍류라고도 합니다. 물론 교과서 밖에서 줏어들은 짧은 지식이지요. 풍류(風流), 바람이 불고 물이 흐르고, 그 가운데서 흥겨움이 있다는 뜻으로 풀어보고 싶습니다.

 

어릴적의 기억으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매년 봄이면 모든 주민들은 마을 뒷동산으로 꽃놀이를 갔습니다. 화수회라고 했던 것 같고, 회치를 간다는 말도 했던 것 같습니다. 회치간다는 말은 요즘은 별로 사용하지 않은 것 같네요. 그날은 마을의 어린애들로부터 마을의 어르신들까지, 남정네들로부터 여인들까지, 모두 모두 모였지요. 가난했던 시절이라 오늘날과 같은 산해진미는 없었을지라도 그곳에는 조금도 궁색함이 없었습니다. 다들 환한 얼굴로 노래부르고 춤을 추고, 장구와 북과 괭가리의 소리가 온 동네를 감싸고 돌았지요.

정월대보름이면 마을의 농악대는 집집으로 다니면서 지신밟기를 했었고요, 오월 단오가 되면 그 역시 흥겨움을 찾았습니다. 설이면 설, 추석이면 추석, 그 외에도 어느 집에 혼사가 있는 날이면 온 마을이 소란스러웠습니다.

 

이렇게 모여서 즐기는 날이면 누군가는 장구를 치고, 권주가를 부르면서 한 잔 두 잔 술잔이 오가고, 흥에 겨운 사람들이 일어서서 민족의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는 소리를 하고, 누군가는 추임새를 넣고, 이것이 어릴적에 가끔씩 볼 수 있었던 씨족사회 공동체의 흥겨움이었습니다. 그때마다 꼭 등장하는 악기는 허리가 잘룩한 장구였지요. 장구의 둥당거리는 소리는 참 좋았습니다. 장구채도 여러 종류가 있었습니다. 대나무를 얇게 깍아 날렵하게 만든 것도 있었고, 끝을 뭉퉁하게 한 후 천으로 감싼 것도 있었지요. 

 

왜 우리 민족의 정서를 '한'(恨)이라고 단정지었을까요?  그 단어와 지식의 근원은 어디에서 출발했을까요? 역사를 통해서 볼 때 어느 민족이든 고난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고난 가운데서 다져지고, 그 가운에서 흥을 찾고, 이것이 인류보편의 역사이겠지요. 그런데 왜 우리 민족의 정서를 '한'이라는 글자로 한정을 지었을까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마 저의 짧은 지식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곰곰 생각해 봅니다. 어쩌면 일본의 침략의 잔재가 아닐까? 그네들은 우리의 밝음은 짓뭉개어버리고, 너희들은 원래 한이 많은 민족이야. 한을 안고 살아가야돼. 꿈틀거리면 안 돼. 이런 식으로 우리의 의식을 노예화시키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요? 깊은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요즘 갑자기 떠오르는 머리속의 생각을 잠시 정리해 보았습니다.

 

장구채라는 식물이 있습니다. 장구채, 갯장구채, 흰장구채, 분홍장구채, 아기장구채, 끈끈이장구채, 오랑캐장구채 등등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만, 공통점은 가늘고 긴 꽃대 위에 통통한 씨방이 맺힌다는 것이겠지요. 그 모양이 꼭 장구를 치는 장구채를 닮았습니다. 그래서 꽃이름도 장구채가 되어버렸지요.

 

한은 승화시키고 밝고 흥겨운 세상을 꿈꾸는 풀빛세상 아름다운 세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