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165 / 족도리풀

풀빛세상 2014. 5. 1. 19:56

 

 

  

 

족도리 풀꽃을 볼 때마다 속으로 크크 웃음이 나오는 것을 어쩔 수 없습니다.

흑갈색이라 일부러 찾아 살피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는 작은 녀석이 땅바닥에 붙어 고개를 포옥 숙이고 있습니다. 뭐가 그리도 부끄러운걸까요? 저 시골 깊은 곳에서 날이면 날마다 태양과 벗하며 살아가느라 새카맣게 그을려 버린 꼬맹이들을 닮아 있기도 하고, 어찌 보면 세상을 전혀 모르는 깊은 산골 수줍은 처녀애를 떠올리게도 합니다.

 

그런데 당돌하게도 두 손은 하늘을 향하여 치켜 들어 만세를 부르고 있네요.

진초록 두 장의 잎을 날개로 삼아 하늘로 날아 오를 듯 합니다.

사진으로 찍기 위해서는 카메라를 완전히 땅에 붙이고 엎드려야 합니다. 그렇게 해도 온전한 모습을 찍을 없지만, 다행히도 작은 언덕 위나 바위 틈새에 자라는 때깔나는 녀석들을 찾아 만나게 되면 행복해지지요. 사진을 찍기가 훨씬 수월해지거든요.

 

족도리풀이란 족두리에서 유래했습니다.

족두리를 어학사전에서는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네요.

부녀자들 전통 예복 입을 머리 쓰는 (). 대략 여섯 지고, 아래 둥글며 비녀 질러 고정시킨다. 검은 비단으로 만들고 구슬로 꾸민다. 칠보족두리, 민족두리, 조색족두리 따위 있다.

설명을 읽고 족도리풀을 살펴보면 이해가 될 듯 합니다.

 

가끔씩 시골에서 자랐던 어릴적 추억이 새록거리며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전통혼례를 치룰 때, 얼굴에 연지 곤지를 찍고 한복을 곱게 입은 누나들은 머리에 칠보단장을 한 족두리 관을 쓰고 얼굴을 포옥 숙였지요. 그때 양쪽에 서있는 두 여인네가 절차에 따라 신부를 일으켜 세우기도 하고 절을 시키기도 했지요. 사모관대를 쓴 의젓한 신랑은 식을 진행하는 어르신의 구령에 따라 맞절을 하기도 하고, 잔을 받기도 했지요. 요즘의 혼인예식과는 달리 제법 엄숙함이 느껴졌습니다. 그렇지만 구경하는 아낙네들은 옆에서 뭐라고 한마디씩 농을 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그 엄숙함에 여유를 더해 주었습니다.

 

칠보단장으로 장식을 한 족두리, 땅을 바라보며 고개를 포옥 숙인 족도리풀, 까매진 얼굴이라도 포옥 숙이고, 그렇지만 하늘 향하여 두 팔을 벌리고 만세를 부르는 풀꽃의 당당함. 옛날 어릴 적의 추억들..... 그리고 한 세월 어렵고 힘든 과정들을 구비 구비 넘어오면서 고이 늙어가시는 이 땅의 누나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고이 늙어가는 모습을 곰삭는다고 하는가요?

 

작은 풀꽃들의 당당함에서 잠시 옛추억 되살려보는 풀빛세상 아름다운 세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