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166 / 피뿌리꽃

풀빛세상 2014. 5. 21. 13:58

 

 

  

 

너무 아름다운 꽃, 그래서 이 땅에서 사라져가는 꽃입니다.

한 때는 남쪽 섬나라의 어느 오름 어느 오름을 벌겋게 물들이며 피었다고 하지요. 무리 지어 피는 그 꽃들의 아름다움과 화려함은 보는 이의 입에서 저절로 아~ 하는 감탄사가 흘러나오게 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감탄사가 아니라 신음소리와 같기도 했지요. 소문이 나면서 이 꽃을 만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고 내려왔습니다.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한 뿌리 두 뿌리 파서 집으로 옮겨갔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점차 우리들의 눈에서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그 어느 오름에 가면 쉽게 볼 수 있었던 시절, 그 때가 겨우 칠팔년 전이었던가요? 철없는 관광회사에서는 단체 손님을 개인 소유의 목장지역인 그 오름에 풀어 '저 곳에 가면 피뿌리꽃이 있다'고 하여 올라가게 했었지요. 사람들은 정말 뿌리가 붉은가 확인하겠다며 귀한 식물의 뿌리를 뽑아 확인하고 내던져 버리기까지 했답니다. 그리고 그 후 누군가 삽으로 파서 어딘가로 옮겨가 버렸다는 소문이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오름에서 피뿌리꽃은 사라져버렸지요.

 

해마다 꽃쟁이 사진쟁이들 중 몇 몇은 그네들만이 아는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겨우 한 두 개체가 숨어있는 곳을 찾아가서 사진으로 찍어 올리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애를 태우기는 하지만 찾아 만날 수 없었지요. 이러다가 정말로 멸종하면 어떻게 되느냐고 걱정을 하면서요.

올해 갑자기 이 꽃이 나타났다는 소문들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육지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 몇 몇의 사람들도 찍어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이곳 저곳 수소문한 끝에 어렵게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 올라가는 등산로 변에도 있고, 정상의 어느 지점에 가면 만날 수 있습니다.

 

가파른 오름을 헐떡거리면서 땀으로 범벅이 되어 올라갔습니다.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는 꽃친구와 함께 정신없이 사진을 찍으면서 오름을 지키며 관리하는 오름지기와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 이 꽃이 무엇인가요? 참 이쁘고, 아랫동네에서 약초로 사용하는 식물과 비슷하던데요. 한 뿌리 뽑아서 저기 초소 곁에 심어 놓았는데 살아날 지 모르겠네요. 뽑아 보니 뿌리가 인삼 비슷하게 생겼던데요.

- 이 꽃은 피뿌리꽃이라고 하며, 아주 귀한 것입니다. 절대로 뽑거나 하면 안 됩니다.

 

오름지기가 쉬는 작은 초소 곁으로 가니 이미 시들어 버린 피뿌리 꽃 한 뭉치가 보였습니다. 땅에 심고 물까지 주어 관리를 하지만, 살아날 것 같지 않았습니다. 모양을 살펴보니 한 뿌리에 대략 십여 줄기로 뻗어나가, 만약 제 자리에 있었더라면 정말 아름답고도 풍성한 모델이 되었겠지요. 그대로 두었더라면 씨가 터져서 훗날 많은 꽃들을 피웠겠지요. 그렇지만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사람의 손을 타게 되었고, 겨우 남아있는 몇 송이 꽃마저 그 존재를 항상 위협받고 있었습니다. 이 꽃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이쁘다면서 꺽어가거나, 뿌리를 뽑아 집으로 가지고 가게 된다면, 이땅에서 영영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피뿌리꽃, 원산지는 저 몽골의 광활한 들판이라고 합니다. 옛날 몽골의 지배를 받을 때 말먹이에 묻어 들어와서 퍼진 것이겠지요. 그래서인지 지방자치단체에서도 혹은 식물을 관리하는 관청에서도 이 꽃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이쁘고, 귀하고, 멸종위기에 놓였다고 안타까워해도 이 꽃에 대해서 연구한다든지, 보존대책을 세운다든지, 이런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저 몽골 들판에 많으니까, 원래 우리의 것이 아니니까, 대략 이런 논리인 것 같습니다.

 

이 꽃 하나의 가치는 무엇일까요?

이 꽃을 잘 보존하여 오름에 무성하게 자라도록 하면 안 될까요?

그렇게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꽃을 보겠다면서 비행기를 타고 내려올 텐데요.

오름의 풍경이 훨씬 아름다워지겠지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환상적인 곳이 있더라는 소문이 전해지지 않을까요?

그리고 우리들의 마음에도 저 꽃이 피어날 텐데요.

 

야생화로서는 너무 화려하고 아름다워 생존이 위태롭게 된 피뿌리꽃의 애환을 잠시 기록해 봅니다.

피뿌리꽃이 벌겋게 피었다던 그 오름들에서 4.3의 피도 참 많이 뿌려졌다는 말도 전해듣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