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167 / 한라새둥지란

풀빛세상 2014. 5. 21. 16:54

 

 

  

 

갑자기 꽃친구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한라새둥지란 찍었어요?

-아뇨. 포기하고 있습니다.

-엊그제 고수님의 도움으로 찍었는데, 불쌍한 중생들을 생각하여 알려주는 것이니 내일이라도 빨리 가 보세요. 며칠이 지나면 시들어버릴 겁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탁하고 걸걸한 소리는 가끔씩 꽃 정보를  주고 받는 꽃친구님들 중의 한 명이지요. 불쌍한 중생이니 뭐니라고 하는 언어들은 가식을 싫어한다는 그네의 언어표현이겠지요. 거기에 맞장구를 치면서 우리는 친구 아닌 친구 사이가 될 수 있었습니다.

 

부랴 부랴 다른 꽃친구에게 '한라새둥지란 정보를 얻었어요. 

내일 찍으러 갈텐데, 시간 있으면 따라 붙으세요' 문자를 넣고 연락을 했습니다.

 

그동안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워낙 희귀한 식물이요, 아는 그네들만이 정보를 주고 받으면서 때가 되면 사진을 찍어 야생화 사이트에 올려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질을 하지요. 남들이야 배가 아프든 말든. 그렇지만 그네들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쉽게 노출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되면 희귀하고도 중한 식물자원이 없어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런 희귀식물들은 너무 예민하여 쉽게 망가져서 사라질 수 있는 위험성이 항상 도사리고 있습니다.

 

벌써 세월이 몇 년이 흘렀습니다. 사람들이 조르고 졸랐을까요? 한 사람 알고, 두 사람 건너가면서 이제는 제법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 같습니다.

 

알고 있는 정보는 '산길 어느 지점에서 아래로 이십 미터 옆으로 십 미터, 그곳에 가면 사람들이 드나들었던 흔적이 있기 때문에 찾을 수 있다'는 정도입니다. 산길에서 어느 지점이란 이곳일 수도 있고, 저곳일 수도 있고, 아니면 또 다른 제 삼의 장소가 될 수도 있겠지요. 참 막연하고 애매하지만, 산속 야생의 꽃을 찾는 우리들에게는 그 정도만으로도 굉장히 큰 정보가 됩니다. 가끔씩은 찾아 뒤지다가 포기하고 내려 올 때도 있습니다만.

 

이곳을 찾아 뒤지고, 저곳을 찾아 뒤지고, 다시 추측되는 또 다른 지점을 찾아 두리번 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사람들이 드나들었던 흔적을 발견하여 조심스럽게 찾아 들어가서 낙엽으로 살짝 가려진 한라새둥지란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키높이는 한 뼘이 될까요? 옅은 노랑색과 갈색과 회색이 뒤섞인 흰색이라고 해야 할까요?

처음 만났습니다. 흥분 ....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두침침한 숲 그늘에서 자라 쉽게 눈에 띄지 않습니다. 

정신없이 찍었다는 표현이 정확하겠지요.

이렇게도 찍고, 저렇게도 찍고, 렌즈를 바꾸어서도 찍고, 반사판을 사용하기도 하고, 드나드는 햇빛을 기다리기도 하고..... 나올 때에는 다시 나무잎으로 살짝 가려주었습니다. 

집에서 확인해 보니 이미 절정의 시기는 지나서 꽃잎들이 상해 작품으로 사용할 수는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렇지만 내년에는 만날 수 있겠지요. 일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해도 즐거울 수 있습니다. 이제 알았으니까요. 

 

전국적으로도 희귀하다고 하지요. '한라'라는 명칭은 제주도에서 처음 발견되었기 때문이요, 지금은 육지에서도 발견되어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새둥지란이라는 뜻은 꽃들이 소복히 피어있는 그 모양이 새의 둥지를 닮았다는 뜻이겠지요.

 

숲 속에 숨겨진 소중한 풀꽃들이 오래 오래 우리 곁에 머물러 주고, 번식하여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제발 어느 풀꽃이 없어졌다더라는 슬프고 가슴 아픈 소식들은 들려지지 않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