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157 / 노란별수선

풀빛세상 2013. 6. 18. 17:41

 

 

 

 

요 녀석, 이제야 너를 만났다.

얼마나 너를 만나야지 하면서 애를 태웠는지 아냐?

벌써 몇 년째 찾아갔다가 발길을 돌렸고, 올해도 두 번째야 두 번째. 

너를 만나야겠다는 오직 한 마음으로 그 멀고 먼 길을 해마다 여러 번 달려갔었다.

갈 때마다 너는 흔적을 감추어버렸고, 네 조그만 꽃잎을 다물고 있어 얼마나 많이 섭섭했는지 너는 알고 있니.

다행히 오늘은 너를 제대로 만나 그동안의 섭했던 마음을 풀어본다. 

이제 눈맞춤을 했으니, 다음부터는 더 쉽게 만날 수 있으리라 본다. 

 

어디 그 모든 것이 너 책임이겠냐? 네 까탈스런 성격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우리들의 무지 때문이라고 해야겠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너를 찾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마음으로 발길을 돌리고 또 돌렸단다. 오늘 너를 만나보니 특별히 예쁜 얼굴도 아니었고, 고귀함이 넘치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런데 어찌해서 네가 뭇 사람들의 마음을 홀렸던게냐? 

 

너는 입이 없어 말을 못하니 아무래도 내가 너를 대신하여, 네 입장에서 말해야겠다.

 

제 이름은 노란별수선이라고 합니다.

영어 명칭으로는  Golden Star Glass라고 하며, 황금별꽃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지고 있지요.

학명은 Hypoxis aurea인데 종소명 aurea에는 '황금빛'이라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수선'이라는 이름 뒷 글자를 얻게 되었느냐고요?

꽃은 분명히 노란 황금별인데, 뿌리는 수선화과의 알뿌리를 가졌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이 저를 노란별수선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붙여주었답니다.

 

한국 사람들은 저를 매우 귀하신 몸으로 알고 있답니다.

1935년 일본인 식물학자가 제주도에서 저의 멀고 먼 조상님 한 분을 채집하여 일본의 경도대학에 보관했었지요. 그동안 주욱 잊혀졌다가 1985년 이우철 교수님이라는 분이 이 사실을 자신의 논문에서 밝혔고, 이것으로 미루어 제주도에 살고 있으리라는 추측을 하게 되었지만 풀숲에 꼭꼭 숨어 있는 저를 아무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2007년에 와서야 야생화를 찍는 분들에 의해 저의 존재가 드러나게 되었지요. 그 후로 많은 사람들이 저를 찾아왔지만 쉽게 만나지 못하자 저를 까칠하다고 비난들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제 탓인가요?

 

먼저 저의 외모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흔하고 흔한 풀의 모습을 가졌고, 한 뼘이 되지 않는 키높이를 가졌으며, 이파리에는 하얀 솜털이 보슬보슬하답니다. 다른 풀들과 섞이면 특별하지 않은 제 모습에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더이다. 

 

그러면 왜 꽃 보기가 그토록 어려웠냐고요? 

저를 만나려면 이른 아침에 찾아오세요. 저는요, 날이 밝고 맑은 날에는 오전 10시, 늦어도 11시에는 문을 닫아버리거든요. 날이 흐린 날이면 한 두 시간 늦추기도 하지만, 인간 세상의 시계로 점심시간이 넘어가면 문을 닫고 쉬면서 내일을 준비해야 한답니다. 아마 저를 찾아왔으나 만나지 못해 서운했던 분들은 거의 대부분 시간을 맞추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요, 보기는 평범해도 황금별이라는 이름을 가진 고귀한 혈통인데, 아무 곳에나 쉽게 뿌리를 내려 자랄 수는 있나요? 특정 지역의 몇 군데를 정하여 꼭꼭 숨어서 살고 있답니다. 요즘 소식 들으니 남해안의 몇몇 지역과 섬에서도 발견된다고 하더군요. 우리의 동족 그네들에게 안부를 전해주세요.

 

애야, 너는 까탈스러운 성격이 아니라, 수줍음과 고귀함이라는 성품을 가지고 있구나.

너의 드러나지 않으려 하는 평범함과 단순함 속에서 진정한 겸손이 무엇인지 배워야 할 것 같구나.

 

노란별수선을 처음 만난 설레임에 아직도 가슴이 콩닥거리는 풀빛세상 아름다운 세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