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의 짧은 이야기

짧은 이야기 70 / 나리난초

풀빛세상 2013. 5. 29. 00:10

 

 

 

 

글이란 무엇일까요?

글이란 '그리다'에서 나왔겠지요.

어떤 날을 무엇인가를 그려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림이 아니라 글을 그리고 싶은 충동이 일렁이며 일어날 때도 있지요.

그러나 어떤 날은 마음도 머리도 정신도 텅 비면서 아무 것도 그릴 수 없는 무력감에 시달릴 때도 있습니다.

 

비 그친 날 꿈틀꿈틀 기어가는 지렁이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때로는 메마른 땅 위를 온 힘을 다해 몸으로 기어가는 지렁이들을 본 적도 있지요.

온 몸으로 그림을 그려가도 땅 위에 흔적을 남기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가야 할 길이 있다면 가야만 합니다.  

무거운 육신의 껍질을 벗어버려 가벼워진 영혼이 저 멀리서 손을 흔들며 바이바이 할 때까지

 

숲 속의 나리난초를 만나고 온 지도 며칠이 지났습니다.

사진은 '찍는다'고 하며, 글은 '그린다'고 할 때,

찍어 온 사진으로 글을 그려보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샘이 깊지 못해 쉬이 말라버리고

불순물이 많아서 맑은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저 숲의 나리난초는 아무런 말이 없는데....

풀꽃들을 만드신 하늘 그분도 아무런 말이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