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143 / 땅나리

풀빛세상 2012. 8. 2. 16:01

 

 

  

 

땅을 향해서 고개를 숙이며 피어난다는 꽃 땅나리, 육지에서는 제법 키가 커다고 하는데 남쪽 섬나라 바닷가에서 피어나는 땅나리는 겨우 두어 뼘 높이로 자랄 뿐입니다. 아마도 너무도 척박한 환경 때문이겠지요. 그것도 부끄부끄 하듯이 땅으로 고개를 포옥 숙였지만 꽃송이가 발그래해졌습니다. 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춤사위가 느껴집니다. 한 팔은 하늘을 향하고, 다른 한 팔은 땅을 향하고, 그리고 고개를 다소곳 숙였습니다. 요란스런 현대무용이 아니라 한을 승화시켜가는 옛 고전무용의 기본자세를 떠올리게 됩니다.

 

멀지 않은 바닷가에  땅나리가 피었다는 소식을 듣고 차를 몰아 천천히 달려가고 있을 때 공옥진 여사의 타계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날은 하늘의 태양빛이 따스했던 7월의 초순이었지요.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뭉클한 감정을 지그시 누르면서 꽃을 찾아 담았습니다. 

 

오래 전, 기억으로는 1986년쯤 되는 것 같습니다. 잠시 장애인복지기관에 몸을 담고 일을 할 때에 공옥진여사를 초청하여 장애인돕기 자선공연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먼발치에서 그분이 공연하는 모습을 뵈었지만 기억은 오래오래 간직되었고 결코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그분의 생애에 대해서 검색하며 찾아보았습니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삶의 이력들이 대충이나마 드러나게 됩니다. 참 기구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춤으로 한을 승화시켰고, 창을 하며 춤추다가 죽는 것을 행복이요 운명이라고 여겼습니다.

 

일제시대에 남도의 소리꾼의 둘째딸로 태어나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7세의 어린 나이에 무용가 최승희의 집 몸종으로 팔려 일본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의지할 곳이 없어 다리 밑에 살며 문전걸식으로 생명을 유지했었고, 경찰관 남편에게는 버림을 받았으며, 경찰관의 아내라는 것 때문에 공산당에 잡혀 죽을 고비를 넘기고..... 훗날 한을 풀어내는 일인창무극의 대가가 되었지만 전통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무형문화재로 인정을 받지도 못했으며, 늙고 병들어 정부에서 주는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근근히 생계를 유지하고..... 2010년 11월에야 겨우 심청가 예능보유자로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겨우 일년 8개월이 지난 2012년 7월에 조용히 눈을 감게 되었지요.

 

 

주변의 풀과 땅바닥으로 기어가는 순비기나무의 이파리들이 무대가 되고 관객이 되었습니다. 갯메꽃 줄기들도 덩달아 하늘을 향하여 얼쑤~ 흥을 돋구고 있습니다. 함께 춤을 추자는 것이겠지요.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가는 바닷가에서 그네들만의 작은 공연이 벌어졌습니다. 혹시나 방해될까봐 숨죽여 지켜보면서 조용히 셔터를 눌렀습니다.

 

아랫 사진을 보게 됩니다. 시들어버린 혹은 시들어가는 꽃송이. 풀벌레들이 파먹었을까요? 피어나는 꽃송이도 온전하지 않습니다. 찢어지고 상처가 나고..... 그런데도 몸짓은 당당하기만 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혼을 다해서 신명나는 춤을 추리라 하는 듯이요. 아릿한 마음으로 한 컷 담았습니다. 진짜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잠시 생각을 굴려보면서요. 내 인생의 마지막도 이런 모습이 될 수 있을까 곰곰 생각하면서요. 

 

한을 춤과 창으로 풀어내었던 공옥진 여사를 추모하며 예술과 인생을 사유(思惟)하는 풀빛세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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