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138 / 약난초

풀빛세상 2012. 6. 13. 16:03

 

 

 

바람의 속살을 닮은 난초라는 표현을 누가 처음으로 사용했을까요?

'어떻게 그런 표현을'이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게 됩니다.

약난초라고 합니다. 아마 한방에서 약용으로 널리 사용했었다는 뜻이겠지요. 그렇다면 과거에는 깊은 숲 속 어딘가에서 제법 흔하게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점차 사라지기 시작해서 지금은 쉽게 만날 수 없는 희귀식물이 되어버렸습니다. 한 때는 거제도의 숲 속에서 많았다는데, 약효가 있고, 항암작용이 있고.... 등등의 소문이 나면서 거의 다 사라질 수밖에 없겠지요.  

 

알면 너무 쉽게 찾을 수 있는 곳, 모르면 절대로 찾을 수 없는 곳에서 만났습니다. 당연히 누군가의 도움을 얻었겠지요. 온통 초록으로 뒤덮여 있는 어둠침침한 숲 속의 짙은 나무 그늘 아래에 무리지어 피어있었습니다. 머리 위를 지나가는 태양빛이 가끔씩 비췰 때에는 눅눅했던 색채들이 갑자기 활기를 띄면서 밝아지기 시작합니다. 회갈색처럼 보였던 꽃잎들이 연분홍의 옷으로 갈아입는 데에는 다른 수고로움이 필요하지 않겠지요. 단지 하늘의 태양빛이 살풋 살풋 비춰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우리네 인생들도 이런 것일까요?

 

몸이 피곤하고 기분이 눅진눅진할 때에는 물을 데워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음미합니다. 두 손으로 컵을 감싸 안으면 손바닥에 전해지는 따스함이 온 몸으로 전달되면서 마음이 편안해지겠지요. 사람들은 커피 속에 들어있는 카페인의 작용이라고 하겠지만 그보다는 심리적인 요인이 더 클 것 같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카페인만 추출하여 물에 타 마시면 되겠지요. 봉지 커피는 건강에 좋지 않으니 가능한 마시지 말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만의 조용하고도 심심한 시간에 잠시나마 기분을 상쾌하게 해 주는 봉지커피의 그 달콤하고 미묘한 맛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인간 세상은 합리성으로만 따질 수 없는 비합리성이라고 하는 신비의 영역이 있으니까요.

 

약난초, 참 신비로운 식물입니다. 올해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아는 바도 별로 없습니다. 5,6월이면 꽃이 피고, 꽃이 진 후에는 땅에서 푸른 잎이 나와 한겨울을 지내고, 그러다가 계절이 바뀌어 꽃이 나올 때가 되면 잎은 저절로 말라 시들어진다고 합니다. 남쪽 지역의 숲 속에서 자란다고 했지만 지구온난화 때문일까요? 중부 지역에까지 그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점차 사라지고 있으니. 옛날 옛적 짚신을 신은 약초꾼들이 찾아오면 참 많이 반가워했겠지요. 그러나 오늘날 문명화된 사람들이 찾아와 소란을 떨면 자신도 모르게 근심으로 몸과 표정이 굳어지는 것은 아닐까요? 

 

작은 바람이라도 살랑살랑 불게 되면 길다란 꽃대가 간들간들 춤을 출 것 같습니다.

내년에도 만날 수 있을까요?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네들의 조용한 춤사위의 흥겨움에 잠시나마 젖으며, 바람의 속살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그날에는 내 옆구리의 겨드랑이가 간질간질해질까요?

 

바람의 속살이라는 표현에 겨드랑이의 가려움을 느껴보는 풀빛세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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