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134 / 흰대극

풀빛세상 2012. 5. 16. 22:53

 

 

  

 

좁쌀만한 꽃, 들깨만한 꽃, 쌀 반토막 정도의 꽃.... 한 5mm 정도만 되도 다행이고, 1cm가 넘어가면 그나마 편하겠지요. 그 속을 들여다보면 작은 우주가 펼쳐져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지만 한 송이의 풀꽃 사진을 찍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습니다.

 

한 낮의 퇴약빛 아래에 쪼그려 앉아 있으면 땀이 비질비질거립니다. 작은 바람이라도 살랑살랑 불어오면 초점을 맞출 수 없어 눈이 팽글팽글 돌아갑니다.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부슬거리는 날이면 빛이 부족합니다. 숲 속 어둠침침한 곳에서는 모기떼들이 몰려오기도 하고, 때로는 곁에서 독사가 혀를 날름거리며 노려볼 때도 있습니다. 

 

꽃 한 송이를 찍기 위해서 시간을 내기도 어렵고, 기다려주지 않는 꽃들의 시간에 때를 맞추기도 어렵고, 어어~ 하다보면 어느 순간 꽃들은 시들거나 사라져버립니다. 그러면 또 다시 일년을 기다려야하며, 일년이 이년이 되고, 이년이 삼년이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서 꽃 한 송이를 마주하게 되지만, 원했던 결과물이 나오지 않으면 또 한정없는 세월을 기다려야 합니다.

 

흰대극의 씨앗이 맺어갑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열매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씨방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 동그란 알멩이 속에는 눈으로 볼 수도 없는 작은 씨앗들이 들어있겠지요. 사진으로 찍었으니 제법 커 보이지만, 저 동그란 씨방 하나의 크기는 들깨알보다 약간 더 클까요? 어림잡이 그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곳에도 주름과 골이 있고, 돌기가 있고,  꽃술이 있고, 있어야 할 것들은 다 보입니다.

 

쪼그려 앉아서, 혹은 엎드려 찍어야 합니다. 뷰파인더로, 앵글파인더로 들여다보면서 정밀하게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아주 작은 바람이라도 살랑거리게 되면 숨을 멈추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합니다. 설정을 바꾸어 가면서 계속 찍어야 하고, 밝게도 찍고 어둡게도 찍어야 합니다. 그 후에는 자세와 위치를 바꾸어서 똑같은 작업을 반복하다보면 시간은 금방 흘러가 버립니다.

 

쪼그렸던 자세에서 일어서면 눈이 팽글팽글 돌아가고, 머리가 어질어질해지고, 뻐근한 허리에서는 통증이 몰려오기도 하고, 때로는 다리가 휘청거릴 때도 있습니다. 집에 와서 확인해 보면 대부분 버릴 것들 뿐이요, 한 점 두 점 얻기가 어렵습니다. 그럴 때의 허탈감도 있겠지요. 다시 찾아가서 찍을 수는 없고, 내년을 기다려야 하겠지요. 내년이 안 되면 후내년.... 처음에는 조급했었는데 요즘은 이력이 생겼는지 느긋하게 마음 다스릴 줄도 알게 되었습니다.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요? 왜 이런 짓을 반복해야 하는가요? 해야 할 일들은 따로 있는데, 여기에 시간을 소모한다는 것이 인생의 낭비는 아닐까요? 누군가 뒤에서 비난하기도 할까요? 당신(자네), 지금 뭐하고 있느냐고 하면서요. 없는 시간 쪼갠다고 변명을 해도 사실은 변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으니까요? 어디에 꽃이 있더라고 하면 어떻게 시간을 빼내어 달려갈까 속궁리하기에 바쁘거든요. 마음의 부담, 죄책감, 이런 복잡한 마음으로 한숨을 내쉴 때도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포기할 때도 있고, 몸이 먼저 내달리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눈 앞에 펼쳐지는 창조주의 솜씨에 깜짝깜짝 놀라며 탄성을 내지르게 됩니다. 와~ 대단하다.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울수 있을까? 너무도 정밀하다. 창조주의 작품이야..... 이 맛에 취해서일까요? 오늘도 내일도 꽃들의 유혹에 자꾸 마음이 약해지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누군가 찍어올린 꽃 한 송이, 감상하기에는 편할지 몰라도 찥은 땀방울이 그 속에 배어있음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뜻대로 되지 않아서 절망하기도 하는 어설픈 아마추어 작가의 한숨소리가 들려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름다운 풀빛세상의 숨겨진 아픔들을 잠시 토로해 보았습니다.

아름다운 풀꽃들의 세상 풀빛세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