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132 / 남방바람꽃

풀빛세상 2012. 4. 28. 22:06

 

 

 

 

며칠 전 육지에 잠시 올라갔을 때 문자 메시지가 왔습니다.

남방바람꽃을 찍고 싶은데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아, 언제 남쪽 섬나라에 오셨나요? 제가 내려가면 안내해 드리지요.

 

몇 해 전이었습니다. 카페와 블로그에서 처음으로 남방바람꽃 새하얀 꽃잎들을 보면서 마음이 설레이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 만난 적도 없는 분에게 실례를 무릅쓰고 어디에 가면 찾아 만날 수 있느냐고 쪽지를 띄웠지요. 그분은 흔쾌히  받아들이면서 안개 자욱한 날 산길을 더듬어 안내를 해 주었습니다. 그 후로 계속 꽃친구의 인연을 이어오고 있겠지요.

 

남방바람꽃, 남쪽 섬나라에서는 딱 한 군데, 개인 소유의 목장 철문을 통과해서 찾아 들어가야 합니다. 해마다 꽃철이 되면 찾아오는 불청객들로 인해서 목장 관리인의 신경이 예민해진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기 때문에 조심 조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몇 년 내에 이곳도 개발이 될 지 모른다는 소문이 들렸을 때에는 가슴이 철렁해지기도 하지요. 그렇게 되면 남쪽 섬나라에서 이 꽃은 영영히 사라지게 됩니다. 누군가 뜻이 있는 사람이나 단체에서 어딘가 다른 곳에 복원하기라도 하면 좋겠는데 그 일이 그렇게 쉽지는 않은가 봅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빌고 빌어봅니다. 제발 개발이 되지 말고 이 상태로만 보존해다오.

 

남방바람꽃, 저는 이 꽃을 볼 때마다 남방여왕꽃이라고 고쳐 부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초록의 왕국에 빛을 머금은 새하얀 꽃잎이 간들거릴 때마다 꽃의 여왕이 연상되기 때문이지요. 정말 예쁘고 고귀하고 품위가 느껴지는 꽃, 제가 이 꽃을 볼 때마다 느끼는 감동입니다. 

 

갑자기 주제를 바꾸어 봅니다. 아내는 아침에 출근을 하고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옵니다만, 날이면 날마다 무슨 무슨 모임이 있고 만나야 할 친구들이 있다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커리어 우먼이라고 하지요.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은 남편이 아내를 배웅하고, 저녁에는 집에서 맞이할 준비를 하는 날이 많아집니다. 집으로 돌아온 아내는 공연히 심통을 부릴 때가 있습니다. 집이 어지럽다. 왜 설거지는 안 되어 있느냐.... 그럴 때에는 맘씨는 곱지만 가부장적인 가치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남편의 얼굴이 일그러지기도 하겠지요. '여봇, 당신이 그렇게 말하면 난 어떡하라고.... 이 정도라도 하면 많이 한 거  아니야..... '

 

겉보기에는 씩씩한 아내이지만 육신에 숨겨 놓은 병이 있습니다. 류마티스 관절염. 원인을 알 수 없고, 특별한 치료법도 없는 병, 단지 손가락 관절에 변형이 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며, 때를 맞추어 진통소염제를 먹어야 합니다. 아내는 가벼운 일 외에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기에 남편의 몫이 늘어만 갑니다. 속으로야 제길~ 하겠지만 늙어가면서 등 도닥거리며 살아야 할 부부이기에 '여보, 괜찮아. 내가 할께' 이렇게 해야겠지요.

 

이런 생활이 반복되면서 아내는 어느듯 여왕으로 등극하기 시작했습니다. 왕국의 식구라고 해 봐야 남편과 아들 둘이요, 그나마 아들들은 군에 가 버렸으니 남편과 아내 둘만의 공동체이지요. 아내는 지시를 하고 남편은 순종을 하고, 그러다가 밤이 되면 한 이부자리 속에서 서로 손잡아 주고 등 긁어주게 됩니다. 가끔씩은 찡알찡알 말다툼을 하며 등 돌려 눕기도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어쩔 수 없이 등 토닥거리며 살아야 하겠지요. '여보, 오늘도 수고했어. 힘들지 않아?'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도 곱다고, 서로 말을 아끼며 조심하려고 합니다.

 

육지의 것과 이쪽의 꽃을 비교하게 되면, 육지의 꽃들은 새하얀 꽃을  감싸고 있는 꽃받침대의 붉은색이 도드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남쪽 섬나라의 꽃들은 꽃받침까지도 흰색에 가깝기 때문에 한라바람꽃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작은 숲 속 반그늘 아래에서 도도하게 피어나는 새하얀 꽃들, 다시 한 번 저는 이 꽃들을 남방의 여왕꽃이라고 불러봅니다. 그러면서 남은 세월 여왕으로 모시고 살아야 하는 아내를 마음 깊이 생각해 봅니다. 여보, 몸 건강해야 돼. 그래야 내가 편하지.

 

첫 사진은 작년에 찍어 작품전에 출품했었던 꽃이고, 아래 두 사진은 며칠 전에 찍었습니다.

꽃 중의 꽃은 영원히 아내일 수밖에 없는 현실, 풀빛세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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