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의 짧은 이야기

짧은 이야기 4 / 산자고와 가자고

풀빛세상 2012. 3. 23. 21:15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얕으막한 오름의 풀밭에서 한 무리의 사진사들이 풀꽃을 담고 있을 때, 

지나가던 길손이 궁금한 듯 물어보았습니다.

'꽃 이름이 무엇인가요?'

'산자고, 산자고입니다.'

윙윙 불어가는 바람소리에 서로간의 대화가 매끄럽지 못했던 것일까요?

'담자고? 담자고라고요?'

'아니, 산자고, 산, 산자고입니다.'

사진을 찍고 있던 그네는 '산'이라는 말에 강한 엑센트를 주며 대답할 수밖에 없었지요.

 

잠시 머물며 흥미롭게 관찰하던 길손들이 발걸음을 옮기며 소리쳤습니다. 

'여보, 우리는 가자고~~'

머뭇거리고 있는 아내를 부르는 남편의 굵은 목소리는 유난히 '가자고'를 강하게 발음하고 있었습니다.

'산자고? 가자고?' 누군가의 입에서 터져 나온 말이었지요.

머물고 있는 그네들이나, 떠나가는 길손들이나, 다들 하하 유쾌하게 웃었겠지요.

 

담자고? 산자고? 가자고?

 

햇살이 뉘엿거리는 늦은 시간, 꽃들이 피어나는 풀밭에는 작은 여유로움이 있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