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129 / 개구리발톱

풀빛세상 2012. 3. 22. 18:34

 

 

 

 

개구리발톱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겨울잠에서 갓 깨어난 개구리들이 봄날의 늦추위에 에취~ 하면서 폴짝폴짝 튄다는 춘삼월, 남쪽 나라에서는 개구리발톱이라고 하는 풀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한 뼘 키높이의 식물에 아주 옅은 분홍빛을 머금은 새하얀 꽃들이 피어나지요. 쌀 한 톨보다 더 작은 꽃송이, 갓 피어나는 꽃송이들은 세상이 아름다워, 태양빛이 눈부셔 하면서 하늘을 향하여 고개를 바짝 들기도 하지만, 그 한 순간이 지나면 다소곳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몇 년 전 이 작은 꽃송이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이런 글귀를 흥얼거려 보았지요. 작다고 깔보지 말라. 내 속에 우주를 품었거늘.....

 

가해자에게도 상처가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았습니까?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피해자에게만 상처가 있다고 하겠지만, 가해자들에게는 가해자의 상처가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가해자의 내면에 있는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서는 진정한 평화와 화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말하는 이나 듣는 이나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면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것은 죄와 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화해와 평화와 상생에 관한 내용이기 때문이겠지요.   

 

다음 수업 시간에는 개구리 해부가 있으니 개구리를 잡아 오세요.

갸름한 얼굴에 볼살이 약간 통통했던 여선생님은 항상 생글생글 웃으면서 수업을 진행시켰지요. 조별로 모여 앉은 까까중 머리의 중학생들은 폴짝 튀려고 하는 개구리들을 붙든 후 클로로프롬을 묻힌 약솜으로 마취를 시켰습니다. 몇몇 학생들은 해부대 위에 누워 아직도 숨을 볼록거리고 있는 개구리의 말랑말랑하고도 새하얀 배에 메스를 가져다 대었지요. 엣띤 모습의 예쁜 여선생님, 까까중 머리의 중학생들, 클로로프롬, 해부되는 개구리....

 

어릴 때 시골의 애들에게 개구리는 존엄한 것은 아니었지요. 

개구리는 개구리였을 뿐, 흔하고 흔한 장남감, 살아서 폴짝 뛰어다니는 장난감이었을 뿐, 어떤 애들은 개구리를 뒷다리를 구워 맛있게 먹기도 했었지요. 지나가는 사람의 발에 밟힐만큼 흔했고, 사방에 널려 있었고, 이솝 우화에서는 겁 많았던 토끼보다 더 겁이 많았다고 하는 개구리이지요. 그런데 애들은 이렇게 연약하고 순한 개구리에게 못된 짓을 참 많이 했습니다. 왜 그때 그렇게 못된 짓을 했을까요? 그리고 왜 잊혀지지 않고 기억에 남을까요? 이것도 가해자의 상처라고 할 수 있을까요? 개구리들아, 미안해, 그때 우리가 너희들을 너무 많이 괴롭혔어. 이렇게 속으로 용서를 빌어야 할까요?

 

옛날, 까마득한 옛날, 전설 속의 이야기일까요? 

제국의 영광을 꿈꾸었던 한 무리의 군인들이 외딴 곳에 높고도 단단한 울타리를 세우고, 잡아온 포로들을 대상으로 매일같이 하루도 쉬지 않고 생체해부를 했었답니다. 클로로포름으로 마취를 시키고, 메스를 가져다 대고, 아직 살아서 펄떡이는 장기들을 하나씩 들어내면서 관찰하고 연구하고 내버렸다지요. 그네들도 훗날 가슴 아리는 아픔으로 용서를 빌었을까요? 진정으로 참회하며 빌면서 그네들 속에 숨어있는 깊고도 깊은 상처들을 치유해 갔을까요? 그네들 스스로 내면 깊은 곳에 숨어있는 그 두렵고도 어두운 상처들을 치유해내지 않는다면, 진정한 화해도 평화도 상생도 이루어질 수 없겠지요.

 

생명의 즐거움으로 온통 소란스러운 희망찬 봄날에 이야기의 주제가 무거워져 버렸습니다.

개구리발톱이라고 하는 식물, 살펴보기만 해도 즐겁습니다.

작고, 앙증맞고, 예쁘고, 하얗고....

그러면서 용서와 화해와 평화와 사랑 등등의 단어들을 떠올려 봅니다. 

 

작지만 우주를 품고 있는 개구리발톱이라는 꽃송이를 보면서, 우주의 평화를 염원하는 풀빛세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