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127 / 붉은겨울살이

풀빛세상 2012. 3. 6. 12:29

 

 

  

 

늦추위가 잰걸음으로 머물고 있던 3월의 캠퍼스, 학우들이 양지바른 벤치에 오손도손 앉았습니다.

추워보여요. 옷 따뜻하게 입으세요. 겨울씨는 추운 남자인가봐~~

마음이 따스한 여름양이 유난스레 추워보이는 겨울씨에게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뽑아주면서 건넨 말이었습니다. 이것이 인연의 끈이었을까요? 겨울남과 여름양은 부부의 연을 맺어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겨우사리, 겨울사리, 겨울살이, 어느 이름이 맞을까요?

식물의 정명은 '겨울사리'이고요, 겨우사리와 겨울살이는 이명으로 처리가 됩니다.

겨울의 끝자락이 되면 높은 산 참나무 굵은 가지에 초록의 싱싱한 식물이 투명한 듯 맑고 고운 구슬을 달고 그 자태를 드러내게 됩니다. 육지에서 자라는 것들은 연노랑의 열매를 맺지만, 남쪽나라의 높은 산에서 자라는 것들은 붉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래서 '붉은'이라는 이름이 덧붙여지게 되겠지요.

 

붉은겨우사리, 붉은겨울사리, 붉은겨울살이, 어느 것이 맞을까요?

겨울사리에 '붉은'이라는 접두어가 붙었으니 '붉은겨울사리'가 맞지 않을까요?

그런데 '붉은겨울살이'라고 해야 한다기에, 어리둥절해질 뿐이었습니다.

 

겨울의 마지막 눈이 내린 후 며칠만에 짬과 틈을 내어 산으로 내달렸지요.

지난 겨울의 첫 산행. 참 이상하지요. 겨울의 첫 시작점도 아니고, 첫눈이 내렸을 때도 아니고, 하나의 계절이 끝나감을 아쉬워하듯 하늘이 마지막 눈을 펑펑 쏟아부었던 2월 하순의 끝지점 어느 날, 지난 겨울의 첫 산행 겸 마지막 산행으로 설국으로 변해있는 한라산으로 타박타박 힘든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냥 이대로는 찾아오는 봄을 맞을 수 없었기에.

 

나무는 하얀 옷을 입었습니다. 

몸시도 추울 것 같은데 의젓한 모습으로 제 자리를 지키고 있네요. 덜덜덜덜 떨리는 맹추위, 쌔애앵 쌔애앵 스쳐가는 칼바람, 그 모든 것을 견디다보면 몸에는 세월의 흔적 나이테 하나가 더해지게 됩니다. 이것을 연륜이라고 해야겠지요.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았습니다.

까마득히 높아 보이는 그곳에 초록의 새둥지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맑고 고윤 하늘 배경으로 초록의 잎이 하얀 눈을 뒤집어 쓰고 붉고 영롱한 열매들을 품어 안았습니다. 아! 겨울사리다. 남쪽 나라의 붉은겨울살이. 초록의 줄기와 잎, 하얀 눈, 붉은 열매의 조화, 어느 누군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만날 수 있는 풍경이라고요.

 

짊어지고 가던 가방을 조용히 내리고 카메라를 꺼냈습니다.

삼각대를 들고 오지 않은 것이 무척 아쉬웠습니다. 기본 줌렌즈로 몇 장을 찍고, 다시 망원렌즈를 물렸습니다. 망원렌즈로 멀리 있는 것을 당겨 찍으려면 삼각대가 필수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손의 아주 작고 미세한 떨림이 먼 그곳에서는 커다란 오차를 만들게 되겠지요. 그렇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최대한 몸의 떨림을 억제하고, 호흡조절을 하고, 카메라의 ISO는 올리고, 조리개도 가능한 많이 열고, 셔터속도는 1/800 혹은 1/1500 정도로 설정하면 되겠지요.  

 

겨울사리, 참나무에 반기생하는 식물입니다.

푸른 잎이 있어 광합성도 하겠지만, 부족한 양분은 숙주인 나무로부터 얻어쓰게 됩니다. 약간 성가시게 하는 점은 있겠지만 그래도 사시사철 벗삼아 살며, 낡은 이파리 하나도 남기지 못하는 한 겨울에도 푸른 잎과 아름다운 열매로 장식이 되어주니 나쁠 거야 없겠지요. 그 열매에는 다양한 약효성분이 포함되어 있어 사람들을 널리 이롭게 한다고도 합니다.

 

참 이상하지요.

한겨울,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그 혹독한 추위에도 초록으로 싱싱한 생명을 유지하며 아름다운 구슬열매를 달고 있는 겨울사리, 그리고 남쪽나라의 붉은겨울살이가, 맑은 하늘을 둥둥 떠다니고 있다는 그 사실이. 마치 겨울남과 여름양이 아웅다웅 다투면서도 오손도손 살아가는 이야기처럼.

 

알면 알수록 신비하고 아름다운 세상, 풀빛세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