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125 / 민들레 홀씨 되어

풀빛세상 2011. 12. 12. 18:02

 

 

 

 

며칠 전 첫째 아들이 군 입대를 했습니다. 이제 겨우 며칠이 지났네요. 아마 지금쯤 운동장에 모여 제식훈련 총검술 등등 기본적인 훈련을 받고 있겠지요. 대한의 건강한 사내라면 당연히 거쳐야 하는 과정이기는 하지만 보내는 부모들의 심정을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요? 제발 사고없이 잘 다녀와라. 그러면서 더 많이 씩씩해지고 철들어 오기를 바라겠지요.

 

부모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떠나가는 아들은 뒤돌아보지도 않고 함께 입대하는 친구가 기다린다면서 휑하게 달려가 버렸지요. 남들은 군 부대 앞에까지 따라간다고 하지만, 아들은 며칠간 바람이라도 쐬겠다며 일찍 육지로 올라가 버렸습니다. 속으로, '야 이놈아, 그래도 엄마 아빠에게 잘 다녀오겠습니다 하면서 인사라고 하고 가야하잖냐' 했었지만 속마음으로 그쳐야만 했었습니다.

 

가을 그리고 겨울,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는 지금도 파릇 파릇 새싹이 돋고, 철을 잃어버린 꽃들은 양지 바른 곳에서 이곳 저곳 망울을 터뜨리기도 하겠지요. 그러다가 갑자기 얼음골 찬바람에 눈비라도 섞여 내리게 되면 에취~ 하면서 자지러지겠지요. 꽃이 지면 씨앗이 맺고(혹은 알뿌리라도 간직하면서), 씨앗이 떨어지면서 새로운 계절을 준비해야 합니다.

 

어찌 보면 꽃은 꽃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새로운 대물림을 위한 과정의 일부분이겠지요. 누군가 이런 말을 했었지요. 꽃들의 아름다움은 그 자체가 생존과 번식의 수단이라고요. 같은 종류의 꽃이라도 더 맑고 밝고 화사한 색, 그윽하고도 강한 향, 그리고 더 많은 꿀샘.... 발이 없어 움직일 수 없는 꽃들의 능동적이며 치열한 생존경쟁..... 아~ 그렇군요. 아름답다면서 무심코 꽃 한 송이를 꺾는 것이 때로는 그네들의 생의 의미와 목적을 파괴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요.  

 

가끔씩 생각하며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생의 의미가 무엇일까?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며, 무엇을 남길 것인가? 젊었을 때에는 이런 문제로 고민하고, 책과 씨름하고, 갈증을 달래노라고 산과 들을 쏘다니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앉은 자리에서 조용히 말없음의 물음표만 던져 봅니다. 이제는 더 이상 무엇을 이루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제껏 살아온 인생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며 또한 앞으로 남은 인생의 갈무리가 성숙한 알맹이로 맺어지기를 기도해야겠지요. 

 

때로는 텔레비전에서 야생의 생명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생명있는 모든 것들은 생존의 본능과 함께 대물림의 본능들이 있지요. 생존과 대물림을 위해서는 사랑, 경쟁, 외부와의 투쟁, 그리고 자기희생이라는 공식들이 성립하게 됩니다. 이것이 생명있는 모든 것들 속에 짐지워져 있는 숙명이겠지요. 오늘 나에게 주어진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은 나의 선조들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요, 이제 다시 나의 후손들에게 넘겨 주어야 하겠지요.

 

간당간당 매달려 있는 민들레 홀씨가 하나 둘.... 바람에 날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생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거창할 것 없다구요.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것이 모든 생명있는 것들의 운명이라면, 만나고 헤어지고, 사랑하면서 보듬어 보고, 그리고 아들딸 낳고 오손도손 살다가 민들레 홀씨 같은 아들딸 떠나보내는 것이 인생의 의미요 보람이겠지요. 그 가운데 온갖 생의 상채기가 남을지라도, 그것마저도 과정이기에 긍정하면서 살아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