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121 / 고구마꽃

풀빛세상 2011. 10. 10. 19:31

 

 

 

  

 

오래간만에 고구마꽃을 찾아 찍었습니다. 왜 기분이 좋을까요?

하늘에는 회백색의 구름이 낮게 깔린 꾸물꾸물한 날씨에 몸과 마음은 축 늘어지는 날, 외딴 곳에 위치해 있는 연립주택 주변을 천천히 돌아보면 제법 많은 풀꽃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무리지어 피어있는 서양미역취가 노란 꽃들을 피웠습니다. 꼬불꼬불 무질서하게 물이 흘러가는 개울가에는 연분홍의 루즈를 살짝 바른 흰색의 고마리 꽃들이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사위질빵, 으아리, 배풍등, 댕댕이덩굴, 구기자 등등 .... 여름의 풀꽃들은 이제 씨앗을 맺어가고 있었습니다.  

 

모퉁이를 돌 때 텃밭의 낮은 돌담을 타고 고구마 줄기가 넘어오고 있었습니다. 짙은 초록의 이파리 틈새로 갑자기 연분홍이 섞인 흰색의 꽃 한 송이, 고구마꽃이었습니다. 작은 흥분, 설레임....

 

고구마꽃은 만나기가 힘이 들지요. 메꽃과에 속하는 고구마는 저 멀고 먼 아메리카의 열대기후 지역이 원산지라고 합니다. 기후와 일조량과 토질 등이 맞지 않을 때에는 꽃을 피우지 않으려 하지만, 강한 태양빛과 바싹 마른 땅의 조건이 갖추어지며 고향을 생각하는 고구마는 줄기에 꽃을 피우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신시대 영조 39년(1783)부터 심기 시작했는데, 그 당시 일본에 사신으로 갔던 분들이 들여와서 퍼뜨렸다고 합니다.

 

고구마꽃을 찾아 찍으면서 왜 기분이 좋았을까요? 찾아 만나기 어려운 꽃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릴적의 추억들이 파노라마가 되어 스쳐 지나가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어릴 때 고구마를 참 많이 먹었습니다. 시골마을에서 겨울철의 유일한 간식이기도 했었지요. 한 솥 넉넉하게 삶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을 식구들이 모여 앉아 먹었습니다. 밥솥에 서너 개를 넣으면 하루의 간식이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제일 먼저 삶은 고구마 남은 것이라도 있는가 찾아보았습니다. 커다란 생고구마를 적당한 두께로 썰어 겨우내 말리기도 했지요. 우린 이것을 빼때기라고 불렀습니다. 손가락 크기의 작은 것들을 삶아 초가지붕 위에 늘어놓아 말린 것을 우리는 쫀드기라고 했습니다. 입에 넣고 살살 굴리면서 먹으면 쫀뜩쫀득하면서 단 맛이 우러났지요. 

 

무엇보다 쇠죽을 끓인 후 남은 불에 구워먹는 고구마 맛은 일품이었지요. 숯불이 강할 때에는 큰 것들을 골라 적당하게 썰어 생선을 굽는 석쇠 위에 올렸습니다. 잿불만 남았을 때에는 주먹크기를 골라 푹 파묻어 놓았지요. 방학을 맞이한 아이들은 겨우내내 고구마가 잘 익었는가 확인하기에 바빳답니다. 우리들의 어린 시절은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고구마 한 톨에는 친구들과의 소꿉장난이 있습니다. 편을 가른 후 뛰놀았던 진놀이, 술레가 된 아이가 나머지를 잡으러 다녔던 술레잡기, 납작한 돌을 던져 맞히는 말뚝놀이, 손가락으로 돌멩이를 튕겨가며 놀았던 땅따먹기, 딱지놀이, 구슬치기, 자치기, 썰매타기 등등 .... 지금은 추억 속에만 남아있는 온갖 종류의 놀이들이 기억의 저편에서 아슴거리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 외에도 고구마에 얽힌 추억들은 참 많지요.

 

요즘은 먹을거리가 너무 흔해졌지요. 달고 기름진 맛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더 이상 고구마를 찾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식이섬유를 넉넉하게 품고 있는 고구마는 다이어트 식품으로, 무엇보다도 성인병의 위협 앞에 놓인 현대인들의 건강식품으로 인기가 있다고 하지요.  

 

고구마꽃을 통해서 기억의 저편으로 잠시 다녀오는 풀빛세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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