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120 / 싸리꽃

풀빛세상 2011. 10. 6. 12:50

 

 

  

 

앞에 앉은 훈장님이 '바담풍'이라고 하면 조물조물 모여앉은 조무래기들이 개구리합창으로 '바담 풍'이라고 따라 읊게 되겠지요. '그게 아니야. 다시 따라 해 봐' 하면서 큰 소리를 내지르지만 혀가 짧은 훈장님의 입에서는 여전히 '바담 푸웅'이라는 소리만 나올 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긴 그림자를 드리우는 해질녘의 시간에 마을 훈장님이 지나가시기라도 하면, 무질서하게 뛰놀던 아이들일지라도 스승님의 그림자를 밟지 않으리라 조심했다지요. 어른이든 아이들이든 '스승님의 그림자도 밟아서는 아니 되느니라'는 이 말을 준중했었답니다. 비록 짧은 한 줄 문장이지만 이 속에 스승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과 함께 정당한 권위를 존경한다는 그 시대의 정신이 녹아있겠지요.

 

옛날 학창시절, 수업에 들어오는 선생님들의 손에는 항상 세 가지, 수업교제, 출석부, 그리고 회초리가 들려있었습니다. 여자 선생님은 날렵하고 예쁜 몽둥이, 남자 선생님은 뭉퉁하고 투박한 몽둥이라는 차이는 있었겠지만, 선생님의 몽둥이는 그 자체가 권위의 상징이요, 교육의 도구였지요. 굳이 그것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야! 조용히 해.' 이 말 한 마디면 교실은 조용해졌습니다.

 

손바닥을 맞을 때의 따끈거림, 엉덩이를 맞을 때의 아릿함, 그리고 여학생들의 종아리에 죽 그으진 서너줄의 흔적들은 동시대를 살아갔던 우리들의 추억이었답니다. 그것은 아픔이 아니라 서로를 바라보면서 씨익 웃어줄 수 있는 여유이기도 했고요, 험한 세상에서 힘차게 살아가자라고 다짐하는 무언의 언어이기도 했지요.

 

그런데 요즘은 그것이 아니라지요. 옛날에는 감히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지요. 지나가던 선생님이 뛰놀고 있는 아이들의 그림자라도 밟게 되면(?) 애들의 입에서는 몹쓸 말들이 튀어나온다지요. 학부형들이 선생님을  찾아와서 멱살잡이를 한다는 뉴스도 전해집니다.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시대정신이 달라졌다는 말이겠지요. 도도하게 흘러가는 시대정신을 되돌릴 수는 없다고 합니다. 옛 사람들은 옛날의 권위를 내려놓고 낮은 자리로 내려가서 눈맞춤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전통의 낡은 옷을 벗고 새 시대에 맞는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역사의 진보냐 퇴보냐를 놓고 논쟁할 것이 아니라, 역사의 진행과정이구나라고 생각해야겠지요.

 

옛날 저의 아버지 할아버지 시대에는 마을마다 서당이 있었고 훈장님이 있었답니다. 모두 가난했던 시절이라 훈장님에게 충분한 사례를 드릴 수가 없었겠지요. 아이를 서당으로 데려가는 아버지는 싸릿대를 한 짐 꺾어 짊어지고 갔답니다. '훈장님, 이 싸릿대로 회초리를 만들어 제 아들을 잘 가르쳐 주십시오. 그리고 나머지는 싸리비를 만들어 팔아 생계에 보태어 쓰십시오.'  

 

싸리꽃을 보면서 옛 스승의 회초리가 그리워지는 풀빛세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