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119 / 양하

풀빛세상 2011. 10. 3. 16:01

 

 

  

 

아내는 이른 아침부터 들뜬 목소리로 닥달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보, 더 늦으면 안 되니 아들 데리고 어머니 집으로 가서 양하를 뜯어오세요.

처음에는 사정하는 듯 하더니 나중에는 목소리가 협박조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식명칭은 양하, 제주도 말로는 양애 혹은 양회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탐라국의 아내를 맞이했고, 탐라국으로 와서 살고 있습니다. 고향을 멀리 떠나 있어 가끔씩은 수구지심(首丘之心)의 마음이 될 때도 있지만,  이것도 운명이려니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이곳을 떠나라고 등을 떠밀어도 떠날 수 없는 것은 아름다운 자연과 풀꽃들에 취했기 때문이겠지요.

 

양하를 채취하러 떠나면서 먼저 카메라부터 챙겼습니다.

올해는 꼭 한 컷 찍어보리라. 남들처럼 예쁘게 찍어봐야지.....

 

서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을 때 남쪽 섬나라의 장모님이 이것저것 챙겨서 보내왔습니다. 받아서 식탁에 늘어놓는 아내의 얼굴은 가볍게 흥분되어 있었고, 입에서는 살풋살풋 미소가 번져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양하라는 식물과 자리젓갈을 알게 되었습니다. 장아찌로 담근 것을 입에 넣고 우물거려보니 짠맛이 가신 후에 특이한 맛이 느껴졌습니다. 갓 뜯어온 싱싱한 것은 잘게 뜯은 후 수제비를 끓였습니다. 처음 맡아보는 강한 향이 있었습니다. 아내는 제주의 친구들과 후배들에게 두루 연락하여 모두 달려오게 만들었습니다. 식탁에 둘러앉아 재잘거리는 그네들의 행복한 미소를 지금도 잊을 수 없네요.

 

제주의 맛이 무엇일까요?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제주의 음식맛에는 불만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정이 들었는지 입맛을 다시게 됩니다. 양하의 강하고도 특이한 향, 자리젓갈의 찐하고도 강한 맛, 돼지고기를 삶은 후 그 물을 사용해서 만드는 고기국수와 걸쭉한 몸국(모자반을 제주도말로 몸이라고 함), 된장을 풀어 넣어 만드는 자리물회 등등, 하나같이 육지에서는 맛볼 수 없는 것들이지요. 그 맛들이 너무 강하고 특이해서 적응할 수 없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메밀과 무우를 사용해서 만드는 맹숭맹숭한 맛의 빙떡, 갈치와 누런호박을 함께 넣어 끓인 갈치국, 시골 식탁에서는 비린내가 나는 시퍼런 콩잎과 시퍼런 무우청을 뜯어 수북히 쌓아놓고 먹으라고 합니다.

 

제가 어머니의 심심하고도 고소한 손맛을 그리워하듯이, 아내는 항상 강하고도 자극적이며 날것으로 먹는 제주도의 맛에 본능적으로 반응합니다.

 

 

꽃들을 살펴보면 제각각 특색들이 있지요. 작은 꽃송이들이 촘촘히 모여 피는 꽃들도 있고, 한 송이씩 제 잘난 맛에 피는 것들도 있고, 사이 좋게 두 송이씩 피는 것들도 있지요. 양하의 꽃을 살펴봅니다. 왜 등을 돌리고 피어있는지. 속으로 ㅋㅋ 웃으면서 떠돌고 있는 우스개 한 토막 소개합니다.

 

나이에 따른 부부의 잠자리

 

20대: 포개서 잔다.

30대: 마주보고(껴안고) 잔다.

40대, 나란히 누워서 잔다.

50대: 등을 돌리고 잔다.

60대: 한 사람은 방에, 다른 한 사람은 거실에서 잔다.

70대:  서로 어디에서 자는지 알지도 못한다.

80대: 한 사람은 방에, 한 사람은 들판(?)에서 주무신다.

 

어쩌면 양하꽃은 50대 부부를 상징하는 꽃이 아닌가 즐거운 상상을 해 보는 풀빛세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