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117 / 털이슬 쥐털이슬

풀빛세상 2011. 9. 27. 17:50

 

 

  

 

등산로변에 쪼그려 앉아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낏흘낏 쳐다보게 됩니다.

'무슨 꽃을 찍으시는가요?' 

호기심을 갖고 물어오는 분이 있으면 굽혔던 허리를 펴고 간략하게나마 설명을 해 주게 됩니다.

 

그런데 가끔씩은 이런 질문을 받을 때도 있지요.

아저씨, 지금 무얼 찍고 있는가요?

꽃이 너무 작아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쪼그려 앉아 있으니 호기심을 넘어 정말 궁금한가 봅니다. 이럴 때는 일어나 자리를 피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리로 와서 카메라를 들여다 보세요. 뭔가 보일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서야 감탄사가 터져 나오게 되지요. '야아~ 정말 예쁘다......세상에~'

 

무슨 꽃을 찍고 있는가요? 무얼 찍고 있는가요? 두 질문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지요.  

 

털이슬이라는 식물이 있습니다. 꽃대에 보송보송한 털이 있고, 그곳에 밤새 내리는 이슬이 잠시 머물렀다가 간다는 뜻이겠지요. 부지런한 사람들은 풀잎을 촉촉하게 적신 이슬이 마르기 전에 산길을 찾아 걷겠지요. 아침의 밝고 맑은 햇살, 하루를 시작하는 새들의 청아하고 고운 노래소리, 그리고 몸을 털면서 톡톡 튀는 풀벌레들..... 생각만해도 싱그러운 하루가 시작될 것 같습니다. 이슬이 또르르 맺혀있는 털이슬에 햇살이 잠시  쉬었다 갈 때, 이것을 찾아 찍어야 작품다운 것이 나오겠지요. 살짝 흔들리기만해도 이슬은 사라지기 때문에 극도로 조심 또 조심하고, 호흡조절을 해 가면서 셔트 한 번을 눌러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 이런 사진을 찍어보지 못했습니다. 해가 중천에 떠 있는 한낮에 만나게 되는 털이슬은 맹숭맹숭하기만 하지요. 어떤 분들은 분무기로 물을 뿌려 효과를 내고 찍는다고 합니다만, 아직 그렇게까지는 못해봤네요. 

 

 

아저씨 지금 뭘 찍고 있는건가요? 지나가는 길손이 물어보면 얼른 자리를 피해서 렌즈 속에 잡혀 있는 꽃을 보여줘야지, 아무리 손으로 가리켜도 그게 무엇인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꽃들이 있지요. 한라산 높은 곳에서 만난 쥐털이슬은 너무 작아 좁쌀 하나의 크기에도 미치지 못할 듯 합니다. 어쩌면 더 작을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너무 너무 정밀하여 감탄사가 저절로 터져 나오게 됩니다.

 

목이 불편하고 가끔씩 가래도 나왔기 때문에 이비인후과에 다녀왔습니다. '어디가 아프세요. 어떻게 아프세요.' 물어보지만 딱히 답하기가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저에게 혀를 내밀라고 하더니만, 휴지 한 장 뽑아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는 혀를 잡아당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소리를 내고, 또 호흡을 하라고 하면서 그 순간 목구멍 안을 살펴보는 것 같았습니다. 잠시 후 눈앞에 펼쳐지는 화면에는 방금 찍은 영상이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가운데로 휑하니 커다른 구멍이 있고 그 주변으로 선홍색 선명한 조직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양쪽으로 하얗게 빛나는 것은 목소리를 내는 성대라고 하네요. 참 아름다웠습니다. 다행히도 약간의 염증은 보였지만 그 외에는 깨끗했습니다. 

 

사람의 몸을 우주의 축소판이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실감은 나지 않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건강한 육체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내 몸 안에도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과 신비가 숨어 있을지요....... 때로는 작고 작은 꽃 한 송이,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그 작고 작은 꽃 한 송이에서도 우주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느껴볼 때가 있습니다. 그 아름다움의 기원이 어디일까요?

 

작고 작은 풀꽃 한 송이에서도 신의 손길을 느껴보는 풀빛세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