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속의 이야기

풍경 속의 이야기 12 / 고향 이야기

풀빛세상 2011. 9. 19. 17:48

 

 

 

 

고향을 떠나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고향이라는 단어만으로도 가슴은 설레이게 됩니다.  

고향을 잊어버린 사람들에게는 상실감, 허탈감, 서러움이 몰려들 수도 있겠지요.  

고향, 영원한 노스텔지어(鄕愁), 포근한 어머니의 품 안, 굳은 살이 박힌 아버지의 손과 발.....

 

고향에는 아직도 구순의 어머니가 활짝 웃으시며 두 팔 벌려 반겨 맞이해 주기 때문에 일년에 한 두 번은 찾아 뵈야 합니다. 어머니 살아 계실 때 효도해야 하는데, 마음만 앞설 뿐, 먼 거리와 팍팍한 삶의 현실이 가로막고 있지요. 어머니께서 저 세상, 영원한 고향으로 가 버리시면 어찌 될까요. 저 역시 다시 찾아갈 일이 없어질 것이요, 그리움 속에 고이 간직될 것 같습니다.  

 

마산, 합포만....

옛날 옛적에 시인 이은상은 이렇게 읊었지요.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요 그 잔잔한 고향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

 

동화작가 이원순님은 이렇게도 읊었지요.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그리고 많은 문인과 예술가들이 배출되었던 예향이기도 했지요.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분 중에는 조각가 문신 선생님이 있습니다.  

 

옛날 옛적 신라말의 고운 최치원 선생님은 어지러운 세상을 피하여 천하를 주유하던 중 합포만이 내려다보이는 산자락 한 켠에 월영대를 짓고 잠시 머무시면서 후학들을 가르쳤답니다. 오래 오래 머물고 싶었겠지만 험한 세상이 그분을 가만 두지 않아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고 합니다. 사방으로 둘러싸인 산은 병풍을 이루고, 바다는 내륙 깊숙이 들어와 잔잔한 호수를 이루고, 그 한 가운데 작은 섬 하나, 그리고 그곳에 비취는 달 그림자는 천하 제일의 풍경이 되었겠지요.

 

한반도에서 가장 공기가 깨끗하고 맑았으며, 오존이 가장 많이 배출되어 자연 치유력이 뛰어났던 곳입니다. 일제는 그곳에 그네들이 쉬어갈 수 있는 휴양촌을 만들어 신마산이라고 이름을 붙였지요. 그 한 귀퉁이 가포에는 국립결핵요양원이 들어섰고요, 그 바닷가에는 가포 해수욕장이 있었고요, 그 당시 출판되었던 소설과 수필집에서는 간간히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했지요.

 

모두 옛날 이야기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그 옛날의 몽환적으로 아름다웠던 풍경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개발의 열풍이 불고 지나간 다음에는 찢어지고 너덜너덜해진 잔해만이 남아 있답니다. 한 때는 좋았지요. 한국 최초로 일억불 수출을 달성했던 한일합섬이 있었고, 수출의 최전선이었던 수출자유지역이 있었답니다. 그리고 지금도 바다 건너편에는 중금속단지와 방위산업체가 그 우람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지요.

 

그 한 귀퉁이 깊숙한 곳에 고향 마을이 있습니다. 오랜 세월 전에 윗대 선조가 내려와 뿌리를 내린 후 오롯이 한 집안 일가친척들만 모여 살고 있는 곳이지요. 남정네들은 논밭을 일구었고, 아낙네들은 바닷가에 가서 해산물를 채취하면서 살았답니다. 오뉴월이 되면 개구리들이 개골개골개골.... 너무 시끄러워서 소년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지요. 밖으로 나가 작은 돌멩이 하나 던져 퐁~ 소리를 내면 세상은 잠시 조용해졌답니다. 그러다가 한 쪽 귀퉁이에서 누군가 개골~ 뒤따라 개골 개골~~ 눈치보며 내는 소리가 들린 후 세상은 또 다시 개골개골개골~~~ 했더랍니다. 맑고 투명한 밤 하늘에는 새하얀 달 하나 동그란 눈을 뜨고 세상을 내려다 보고 있었지요.

 

먹을 것이 없던 시절 풋감을 주워 소금물 단지에 넣어 며칠을 두면 떫은 맛이 없어졌지요. 어린 소년이 한꺼번에 많이 먹는 바람에 변비에 걸려 혼이 났던 적도 있었답니다. 날이면 날마다 애들은 소꼬삐를 잡고 산으로 올랐고요, 작은 막대기 칼을 휘두르면서 무협지의 흉내도 내었겠지요. 아카시아 나무로 야구방망이를 깎아 만들었습니다. 고무신을 신고 축구를 하다보면 공보다 신이 더 멀리 날아가기도 했지요. 

 

시내에서 십여 리 떨어진 곳이라 아직도 흔적은 남아 있지만, 너무 많이 변해버렸습니다. 그래도 고향이라고, 옛 추억이 머물던 곳이라고, 갈 때마다 한 컷씩 담아봅니다. 고향, 도시화가 고도로 진행된 오늘날에 고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너무 변해서 흔적마저 찾아볼 수 없게 된다면, 고향은 더 이상 설렘과 그리움이 아니라 가슴 서늘한 허무가 될 수도 있겠지요.  

 

고향 마을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타향살이에 시달려 지쳐 있는 사람들의 이기심일까요?

너무 빨리 변하는 세상, 전통적인 가치관들이 무너져 내리며, 모든 것이 상대화되어 버리는 포스터 모더니즘의 세상에 적응할 수 없어 허둥거리는 어른들의 투정일까요?

가끔씩 세상이 너무 메마르게 느껴질 때가 있겠지요.

이럴 때 고향이라는 단어가 퇴행이 아니라 치유와 회복을 주는 쉼표가 되기를 빌어봅니다.

 

 

아직도 한 켠에는 작지만 변하지 않은 풍경이 남아있었습니다.

 

옛날 소를 몰고 다녔던 소롯길이 변하여, 거대한 마창대교가 지나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