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속의 이야기

풍경 속의 이야기 9 / 도시의 오아시스

풀빛세상 2011. 6. 3. 20:21

 

 

 

 

 

뭔가 글을 적어야 하겠는데 먹먹할 때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도시의 공기가 영혼을 자유롭게 한다던 시절도 있었지요. 서구에서 산업혁명과 명예혁명으로 지성사의 대변혁이 일어날 때, 파리의 뒷골목에 있는 카페에는 젊은 선남선녀들이 모여 사랑을 하며, 예술혼을 불사르며, 지성의 토론에 열을 올렸지요. 그렇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요, 지금도 사람들은 도시로 꾸역꾸역 모여들고 있습니다. 도시는 점점 더 팽창해가면서 더 많은 사람을 품어안고,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습니다. 도시, 그것도 크면 클수록 좋겠지요. 하늘 높은 곳으로 건물을 쭉쭉 뻗어올리면 더 좋겠지요. 그곳에는 교육이 있고, 문화가 있고, 직장이 있고, 패션이 있고, 세련됨이 있고, 그리고 돈이 돌고 돌면서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농촌 총각도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잠시라도 도시에 몸과 마음을 적셔야 합니다. 도시에는 현대인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있습니다.

 

아파트 생활, 앞집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알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문을 꼭꼭 잠그고 살아야 합니다. 마음의 빗장을 단단히 질러야 합니다. 혹시라도 하는 두려운 마음으로 서로를 의심하기도 해야 합니다. 동물 중에서 사람이 가장 무서운 거야. 아는 사람일수록 조심해야 돼. 이렇게도 가르쳐야 합니다. 천만인이 사는 곳이라면 천만 개의 빗장이 있고, 백만인의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백만 개의 자물쇠가 채워져 있겠지요.  

 

광야가 따로 있나요? 사람과 사람의 소통이 막히는 곳이 바로 광야라고 해야겠지요. 메마른 바람이 불고, 목마름으로 헉헉거리며, 잠시 쉬었다 갈 곳도 없는 곳이 광야이겠지요. 그렇지만 광야에도 맑은 물이 나오며 나무가 자라는 오아시스가 있기에 살만한 곳이 아니던가요?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겠지요. 시멘트 바닥의 작은 틈새에도 생명의 뿌리가 내렸습니다. 작은 오아시스를 만들었습니다. 그곳에는 연결시키는 길도 생겼네요.

 

날마다 도심의 메마름을 느끼면서도 작은 희망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풀빛세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