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115 / 짚신풀

풀빛세상 2011. 9. 10. 17:43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리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제법 빗줄기가 강해집니다.

비를 좋아하시나요? 비오는 날은 어때요?

눈을 반짝이며 물어오는 그네 앞에서 답이 궁해졌습니다. 그네가 무슨 뜻으로 이런 질문을 던지는지는 알 것 같지만, 속으로는 '참, 젊은 사람이 철이 없기는.....' 젊었던 시절에는 비 오는 날의 감성이 있었겠지요. 그렇지만 지금은 몸이 축 늘어지고, 마음은 착 가라앉으며, 허리통증이 일기예보를 대신할 뿐입니다.

 

십 수년 전이었지요. 대구에 살 때 교회의 연세드신 할머니들을 모시고 화왕산 가을 단풍을 구경하려 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단풍으로 붉게 물든 산 앞에서 들뜬 마음으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사진 찍어 드릴께요. 어서 서세요. 이리 오세요.' 그 때 퉁하게 돌아온 대답, '있는 사진도 없애는 판인데, 무슨 사진을 찍으란 말입니까!' 그 이후로는 감히 사진 찍어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을 못하게 되었답니다.

 

비오는 날이면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지요. 옛날 옛적에 짚신장수 아들과 우산장수 아들이 있었답니다. 날씨가 맑게 개인 날이 되면 어머니는 우산장수 아들 때문에 마음이 편치 못했고, 반대로 비가 오는 날이 되면 짚신장수 아들을 생각하느라 마음이 편하지 못했겠지요. 어머니는 날이면 날마다 마음이 편하지 못했답니다. 누군가 마음 돌려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이 아들 저 아들 똑 같이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그럴 수가 있나요?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느 산골, 아버지와 아들이 짚신을 만들어 장에 내다 팔면서 살았더랍니다. 아버지도 아들도 열심히 짚신을 만들어 내다 놓으면 아버지의 짚신은 금방 팔리는데 아들의 짚신은 쉽게 팔리지 않아 애를 먹었답니다. 아버지로부터 배운 기술이요, 똑 같은 재료를 가지고 만드는데 왜 이런 차이가 나올까요? 아들은 쉽게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답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었을 때, 애타는 아들이 숨을 거두려고 하는 아버지 앞에서 애원을 했겠지요. 아버지, 왜 아버지의 짚신은 금방 팔리는데 제 것은 그렇지 못할까요? 비결을 가르쳐 주세요. 마지막 숨을 몰아쉬던 아버지는 '끄터머리'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돌아가셨답니다. 장례식이 다 끝난 후 아들은 두 개의 짚신을 앞에 놓고 꼼꼼하게 비교를 해 보았습니다. 그냥 보면 똑같은 짚신이었지만 뭔가 달랐습니다. 왠지 모르게 아버지의 것이 더 매끄롭고 반지르르 했습니다. 아버지는 짚신을 다 만드신 후에 끄터머리를 말끔하게 다듬었고, 아들은 대충 다듬었던 것이지요.

 

아마 아버지도 아들에게 기술을 가르치면서 숱하게 끄터머리를 잘 다듬어야 한다고 말했겠지요. 아들도 뒷마무리를 한다고는 했겠지만 정성의 차이가 있지 않았을까요? 그 작은 차이를 말로 모두 설명할 수는 없었겠지요. 아들의 마음이 간절해졌을 때 단 한 마디만 들었어도 그 작은 차이가 눈에 보였겠지요.

 

아들들에게 아무리 옳은 말 바른 말을 던져줘도 잔소리로만 듣고 싫어합니다.

애야, 정리정돈을 잘 해야 돼. 청소를 깨끗이 해라. 뒷마무리가 그게 뭐냐. 시간을 아껴라.....

평소에 착했던 아들이라도 때로는 짜증을 내고, 자기 방으로 휑하게 들어가서 문을 닫아버리기도 합니다. '어라 요놈 봐라' 아버지의 입에서는 중얼중얼 불만이 터져나올 것만 같은데도 살아온 세월만큼 몸도 마음도 삭아진 아버지는 잘도 참습니다. '참는 자가 복이 있나니..... 언젠가는 아빠 마음을 알 때가 오겠지....'

 

 

짚신나물입니다. 어린 순은 나물로 사용할 수도 있겠지요. 여름이 되면 샛노란 꽃들을 피우고요, 꽃들이 지고 나면 작은 가시돌기가 총총 박히는 씨방이 맺어지면서 지나가는 사람의 옷에 박히고, 밟고가는 짚신에도 뭍어 멀리 멀리 퍼져나가겠지요. 짚신이라도 팔아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고, 들과 산에서 자라는 이 풀 저 풀을 뜯어 온갖 병의 치료에 사용했었던 우리 선조들의 애환을 담고 있는 짚신나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