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114/ 창질경이

풀빛세상 2011. 9. 3. 13:07

 

 

 

 

 

 

질경이에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토종 질경이도 있지만, 바닷가의 갯질경이, 물가의 물질경이가 있고요, 그 외에도 개질경이, 털질경이도 있고, 국제화시대를 맞이해서 출신성분도 모호한 이런 저런 질경이들도 출현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은 유럽 원산으로 귀화식물인 창질경이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보시는 것처럼 길쭉하게 뻗어 올린 꽃대가 창을 닮았지 않습니까?

 

어디서 본 것일까요? 흐릿한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민주화시위로 세상이 시끄러웠던 시절에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구호를 외치고, 그 중에는 머리띠 찔끈 동여매고 돌팔매질을 하는 사람도 있었겠지요. 폭죽놀이 하는 듯 펑펑 터지는 최루탄의 매케하고 독한 연기에 사람들은 눈물 흘리며 입과 코를 막았겠지요. 그 어느 나라에서는 계엄령이 선포되고 총칼을 든 군인들이 탱크를 앞세워 거리를 막아섰지요. 긴장이 최고조로 달했던 어느 날, 시위대의 어느 분이 꽃다발을 만들어 막아서는 군인들에게 걸어주었다지 않습니까? 아들이요 동생인 그 군인들의 얼굴에는 어색함, 당황스러움, 행복감 등등이 교차했겠지요. 그 후에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는 외신을 본 적이 있습니다.

 

창질경이를 가만히 살펴봅니다. 뾰족한 창끝에 화환을 걸었습니다. 전쟁과 평화라는 단어를 떠올려봅니다. 전쟁은 사라지고 평화만이 넘치는 세상이 될 수는 없는가요? 불가능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오늘도 평화운동에 헌신하는 많은 분들을 떠올려 보면서, 그분들의 수고로움이 세상을 불밝히는 작은 촛불들이 되기를 빌어봅니다.

 

평화(平和)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평은 물 수(水) 위에 가로막대가 하나 걸려있습니다. 가로막대가 뭐냐라고 할 때, 제가 알기에 따스한 봄날의 고요하고 잔잔한 연못 혹은 모내기를 한 논에 동동 떠나니는 개구리밥이라고 합니다. 화(和)는 벼 화(禾)에 입 구(口)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글자이지요. 결국, 평이라는 글자는 모내기 철의 들판을 뜻하고요, 화는 가을 추수를 끝내고 식구들이 둘러 앉아 햇곡식으로(禾) 지은 밥을 나누어 먹는(口) 행복한 모습을 떠올리면 되겠지요.

 

모내기철의 들판, 생각만 해도 흥겨움이 있습니다. 멀고 가까운 산은 연두색에서 초록으로 변해가고요, 모내기가 진행될수록 들판은 파릇파릇한 옷을 입게 됩니다. 산들바람은 불어오고, 뽀리뱅이와 씀바귀들은 까닥까닥 춤을 추고, 먼 산에서는 짝을 찾는 비둘기 소리가 구성지게 들려옵니다. 풀밭에 터억 들어누워 하늘을 보면 하얀 구름이 두리둥실두둥실 천사의 날개자락을 펼치면서 지나갑니다. 아 좋다..... 그리고 가을이 되어 땀흘려 농사 지은 햅살밥의 구수하고 기름진 그 맛,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돌게 됩니다.  

 

동양의 평화가 지극히 농촌스럽다고 한다면 서양의 평화는 폭력적이지요. 서양의 평화를 상징하는 단어는 라틴어 '팍스 로마나'입니다. 팍스(Pax)가 변하여 Peace 가 되었고요, 로마나(Romana)는 로마라고 하는 고유명사의 소유격이지요. 예를 들면, 잉잉거리는 파리떼가 귀찮아 사방에 온통 파리약을 쫘악 뿌려 모두 잠재운 후 조용해진 방안에 들어가 '아 편하다'라고 하면서 팔다리 주욱 뻗고 눕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지요. 제국의 어느 곳에서 조금이라도 시끄럽다고 하면 군대를 파견해서 쓸어버렸고요, 성가시게 구는 사람들은 몽땅 잡아 십자가에 주욱 매달아 제국의 위엄을 보였다고 하지요. 그리고 그네들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로마의 평화!

 

그렇다고 동양의 평화가 더 우월할 수 없는 것은, 밤낮 피땀흘려 농사를 지었어도 이것 저것 다 빼앗기고 나면 식구들 배불리 먹일 양식이 없었다지요. 이곳은 이곳대로, 저곳은 저곳대로, 항상 전쟁과 전쟁, 난리와 난리의 소문들이 끊이지 않았답니다. 평화는 어디까지나 이데아의 세계에 속해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이쯤해서 세계사에 큰 줄기를 이끌고 있는 헤브라이즘의 평화 샬롬을 떠올려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도 손가락 하나 내밀며 '샬롬'이라고 인사할까요? 그네들도 땅의 평화를 갈구했지만 그네들이 마음 놓고 살아갈 터는 이 세상 어디에도 허락되지 않았답니다. 내쫓기고 내몰리고, 그러면서 그네들은 하늘의 평화, 신의 가호로서만 누릴 수 있는 평화, 더 나아가 새하늘과 새땅에서 누릴 수 있는 평화를 염원했다지요. 그 모든 그네들의 마음의 소원 기도의 제목을 담고 있는 단어가 '샬롬'이 아닐까 곰곰 생각해 봅니다.

 

이쯤해서 옛날 그 선지자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떠올려봅니다.

아마 손에는 비파를 들고 뜯으면서 노래 불렀겠지요.

 

그가 많은 민족 중에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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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풀꽃들을 보면서 땅의 평화 하늘의 평화를 그리워하는 풀빛세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