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112 / 영주풀

풀빛세상 2011. 8. 24. 15:03

 

 

  

 

'불편한 진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국의 부통령을 지낸 엘 고어라는 분이 책으로도 적었고 다큐멘터리 영상으로도 찍었지요. 쉬운 우리 말로 표현하자면, 모르는 것이 약이요 아는 것이 병이다라고 해야겠지요. 어떤 주제를 놓고 사진을 찍고 글을 적는다는 것이 처음에는 쉬운 듯하지만 가면 갈수록 어렵고 힘들고 지치고 때로는 회의에 빠질 때도 때도 있습니다.

 

사람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자연은 불편함을 호소합니다. 때로는 신음하기도 하지요. 자연을 사랑하고 야생화를 아끼며 보호한다는 말을 하고, 그 순수함을 내세운다고 할지라도 일단 사람들이 찾아들게 되면 그 순간부터 자연은 망가지기 시작하고 그 신비로움은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무엇을 위해 글을 적고, 무엇을 위해 희귀한 풀꽃들을 찾아 찍고 있을까요? 아직도 가야할 곳이 많고, 아직도 찾아 찍지 못한 풀꽃들이 끝모를만큼 많이 있지만, 가끔씩은 불편한 마음으로 힘들 때가 있습니다. 

 

영주풀, 세계적으로 희귀한 풀꽃입니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도 절멸 위기에 있으며, 어쩌면 수년 내에  한국에서도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혹시나 그렇게 될까봐 사람들의 마음이 날카로워지기 시작합니다. 2007년에 우연하게 발견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1목 1과 1속 1종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 풀꽃은 엽록소가 없는 부생식물로, 길이가 10cm쯤 된다고 하지만 실제 보았을 때 겨우 2~3cm 였습니다. 그리고 한 개채에서 암꽃과 수꽃이 다르게 피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년간에 불과한 짧은 기간이었지만 제법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찍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나도 찾아서 찍어보자'라고 뒤늦은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게 되고요, 먼저 찾아 찍었던 사람들은 일종의 기득권을 내세우면서 '이제 안돼'라고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아직은 어느 누구, 어느 단체에서도 이 풀꽃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 감독 보호에 앞장서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풀꽃 송이가 아닐까요? 온통 흑갈색의 침침한 삼나무 숲 속에 적갈색의 작은 바늘 하나가 꽂혀 있었습니다. '이곳이야 밟지 마' 이렇게 하지 않으면 밟고 지나가도 알 수가 없습니다. 중년의 어질어질한 눈으로 아무리 살펴봐도 이쑤시개를 세로로 가늘고 길게 잘라 꽂아 놓은 것만 보일뿐이요, 접사렌즈를 물린 카메라도 촛점을 잡아내지 못하여 손가략으로 배경을 만들고 손전등으로 비추어야 합니다.

 

영주풀, 남쪽 나라에서도 딱 한 군데만 자생지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나마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무심코 밟다보니 땅 위로 솟아나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하기도 하는 것 같고요, 그 개체수가 몇 안 되기 때문에 위태위태한 상황입니다. 영주풀이라는 이름도 아직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한 상태로 임의로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곳 외에 다른 곳에는 없을까요? 어딘가에 숨어 있다고 할지라도 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을 것 같기도 합니다. 제발 다른 곳 어딘가에서도 꼭꼭 숨어서라도 살아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질 때도 있습니다. 사진을 찍는 분들틈에 끼어 참으로 운좋게 이 꽃을 찍었습니다만, 왠지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아름답고도 신비로운 풀꽃들을 찾아 만나면서도 때로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치게 되는 풀빛세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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