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113 / 질경이

풀빛세상 2011. 9. 3. 11:42

 

 

 

 

 

질경이꽃을 아시나요?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고도 가까운 풀꽃, 민족의 애환과 함께 살아왔으며, 민초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는 식물입니다. 풀들이 무성한 곳보다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밟고 지나가는 곳, 심지어는 수레바퀴가 짓밟고 지나가는 곳에서 더 끈질긴 생명으로 자라기 때문에 차전초라 부르며, 열매를 차전자라고 한다지요. 

 

옛날 가난하고도 약이 없었던 시절에 간기능 보호, 이뇨제, 급체를 내리기 등등 만병통치약처럼 사용되기도 했다지요. 그렇지만 요즘은 그 흔했던 질경이를 만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혹 자란다고 하더라도 빈약한 개체수였을 뿐, 옛날 제가 어릴적에 보았던 것처럼 이곳 저곳 가리지 않고 피고 지던 무성한 군락들을 찾아 볼 수가 없네요. 왜 그럴까? 옛처럼 반겨 맞이해 주지 않으니 스스로 숨어버린 걸까요? 아니면 모든 도로가 포장되면서 자유롭게 뿌리 내려 자랄 수 있는 터전을 잃어 버렸을까요? 아니면 몸에 좋다고 하니까 몽땅 몽땅 캐버렸기 때문일까요?

 

주변을 두리번거렸으나 적당한 모델이 없어 아쉬웠던 중에 저 높은 산, 등산객들이 지나가는 거칠고 투박한 돌밭 한  귀퉁이에 다소곳이 움츠리고 있는 녀석을 찾아 만났습니다. '이제 풀꽃 사연은 질경이 네 차례야'라고 했지만 마음의 부담 때문일까요, 글을 적기가 쉽지 않아 오래 오래 묵혀놓았습니다. 날마다 짓눌리며 살았습니다. 질경이로부터 해방되어야 할텐데라는 생각이 저를 날이면 날마다 힘들게 했습니다. 그렇지만 친숙하고도 평범한 이웃일수록 적절한 사연을 찾기기 더 어려웠습니다.

 

굳이 변명을 늘어놓자면, 앞서 영주풀을 찾아 찍은 이후 마음에 부담과 함께 통증이 있었습니다. 올해는 고마운 분들의 도움으로 제주의 야생난과 귀한 풀꽃들을 제법 찾아 찍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계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서 몇 가지 고민이 찾아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들의 작은 행복에 풀꽃들이 너무 힘들어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이 다 그렇겠지만 순수함을 가장한 변질됨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작은 집단이기주의와 소영웅주의를 가진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제가 하는 사진찍기와 글쓰기의 덧없음을 느낄 때도 있었습니다. 찍어 본들, 써 본들이라는 아릿한 통증이 몰려들 때도 있었지요. 때로는 정신의 창고가 터엉 비는 듯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질경이꽃을 들여다보았나요? 단 한 번이라도 풀밭에 엎드려 꼼꼼하게 살펴본 적이 있나요? 너무 신비롭지 않나요? 저는 헉 소리가 나오면서 창조주의 솜씨를 느껴보았습니다. 무시해도 좋을 만큼 소박담백하지만 그래도 질긴 생명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곰곰 생각에 잠겨보았습니다. 혹시 이 땅을 살아가는 '나'(우리)를 닮은 꽃은 아닐까.

 

풀빛세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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