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111 / 함박이

풀빛세상 2011. 8. 8. 23:47

 

 

 

 

함박이 찍으러가게마씀(함박이꽃 찍으러 갑시다)

함박이가 뭔마시(뭔가요)? 어떤 꽃인가요?

아직도 함박이를 몰라요? 안 찍어봔(안 찍어보았어요)? 그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옵니다.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는 기대가 허물어졌기 때문일까요? 당황하는 눈치였습니다.  

순간적으로 높은 산  깊은 곳에 새하얗고 커다란 꽃송이를 피우는 함박꽃을 떠올려보지만, 그것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어떤 꽃일까? 어떤 꽃이기에 내가 모르고 있을까? 당황스러움이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그네는 생각만으로도 들뜨고 행복한 표정이었습니다. 

함께 모여있는 동료들이 싱글거리면서 한 마디씩 거들었습니다.

풀빛님도 모르는데 우리는 어떻게 알안(알겠느냐)?

 

바닷가 한 켠에는 무성한 풀들이 엉클어지면서 빽빽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모양은 제각각 다르지만 대부분 짙은 초록이었습니다. 초록은 여름의 색갈이지요. 초록의 작은 왕국에는 말없는 가운데 치열한 생존경쟁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곳에는 우뚝 솟아나는 큰 키가 없었고요, 이웃들을 압도하여 밀쳐버리는 비정함도 없었습니다. 치열한 생존경쟁과 함께 더불어 살아보자고 하는 공존공생의 아름다움이 있었습니다.

 

앞서 가는 분이 두리번거리면서 줄기 하나를 들추어 올렸습니다.

여기 있네. 이게 함박이 꽃이우다(꽃입니다).

우르르 몰려든 우리들 눈에는 꽃다운 것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뭐요 뭐? 어디요 어디? 애게, 그게 꽃인가요?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순간은 너무도 짧았습니다.

 

오밀조밀한 것이 달려있기는 하지만 너무 작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풀색 그대로이기 때문일까요? 꽃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어떤 것들은 때가 늦었는지 벌써 시들면서 푸시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몇몇은 꽃을 담겠다고 카메라를 설치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또 다른 신기한 것이 숨겨져 있는가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 '여기에 참골무꽃이 있어요.' 사람들은 우르르 그곳으로 달려가서 이제 막 꽃송이를 피우고 있는 맑은 색감의 앳띠고 아름다운 참골무꽃을 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아쉬워서 나오는 길에 줄기를 들추고 숨어있는 함박이꽃을 찾아 찍었습니다. 맨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던 작은 꽃의 정밀한 모습이 접사 렌즈를 통해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하~ 그래서 그네는 그토록 흥분했었구나. 급한 마음으로 두어 컷 찍고 바쁜 걸음을 앞으로 내달았습니다. 다음에는 더 좋은 모델 만나 더 잘 찍어줘야지..... 그렇지만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할 수가 없네요.

 

빈수레가 요란하다고 했던가요?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던가요?

처음 풀꽃을 찾아 찍을 때에는 마음 속에 작은 교만이 숨어있었습니다만 요즘은 자꾸 한숨만 내쉬게 됩니다. 이것도 몰라 저것도 몰라. 어 이런 것도 있었던가? 날마다 입으로는 탄식이요, 마음 속에는 경이로움으로 충만해지기 시작합니다.

 

자연은 얼마나 많은 신비를 담고 있을까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풀꽃들을 얼마나 많이 숨기고 있을까요?

세상살이가 다 마찬가지이겠지요.

아노라 하는 자만심이 깨어져야 비로소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겠지요.

그러면서 오늘도 꽃 한 송이 알려 주고 가르쳐 주는 이웃들에게 마음의 감사를 전해봅니다.

 

풀꽃들의 세상에서 겸손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겨보는 풀빛세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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