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110 / 백리향

풀빛세상 2011. 8. 4. 21:31

 

 

  

 

백리향, 향이 백리까지 간다는 뜻이 아니라 높은 산의 돌밭에 낮은 키로 깔린 그 풀꽃을 누군가 밟고 지나가면 여리고 여린 몸이 짓이겨지면서 향이 묻어 백리까지 따라간다고 합니다. 어쩌면 산을 내려가 마을로 들어서고, 집으로 들어가도 은은한 향은 여전히 남아있겠지요.

 

아름다운 사람은 떠나간 뒷자리가 아름답다고 했던가요?

향 싼 종이에서는 향이 나고, 생선을 쌌던 종이에서는 비린내가 남는다고 했던가요?

만나고 헤어지는 인생살이 가운데서 아름다운 만남과 여운이 남는 헤어짐으로 살았던가요?

 

세상살이 먼저 살아간 선배가 직장을 떠나는 후배와 헤어지면서 한 글귀 적어놓고 장탄식을 했다지요. 산고수장(山高水長), 산은 높아 많은 짐승을 품어 안고, 강은 길어 수많은 물고기가 뛰논다고 했는데, 나에게는 덕이 없어 사람들이 머물지 못하고 떠나가는구나.

 

세월이 오래 흘러갔습니다. 가끔씩 옛 인연들을 돌아보면 왠지 그리운 사람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면서 곰곰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나는 누구의 그리움으로 남아있을까?

내 인생은 향을 쌌던 종이일까, 아니면 오물을 담았던 그릇일까?

만남도 소중하지만 헤어짐의 과정에 더 많이 신경쓰야겠지요. 잠시의 섭섭함이 지나면 더 오랜 세월 이어지는 아쉬움이 아지랭이처럼 아른거리는 그런 헤어짐이 되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남은 인생이라도 조급함을 버리고 여유로움을 찾아야 할텐데요. 억지로 웃는 웃음이 아니라 속깊은 곳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맑음으로 웃어야 할텐데요. 지나온 세월의 아쉬움을 달래면서 살아야 할텐데요. 천리향은 되지 못한다 할지라도 백리향은 되어야 할텐데요. 그렇지만 오늘 하루를 돌아보더라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속을 벅벅 긁어 상처를 남길 때가 더 많았습니다. 이럴 때는 백리향 풀꽃 앞에서 얼굴이 뜨뜻해질 뿐이지요.

 

높고 높은 산의 바위틈에 뿌리내리고 애잔한 꽃들을 무더기로 피워냅니다. 누군가 짓밟을 때의 아픔과 상처가 있을 때 그 향은 더욱 짙어집니다. 원수도 사랑하라던 큰 스승님의 그 터무니 없는 가르침에 고개 젓고 떠났던 사람들도 훗날 마음 돌이켜 고개 숙이고 참회하면서 되돌아왔다지요. 그렇게 변화된 사람들이 세상의 백리향이 되었겠지요. 그래서 오늘도 사람들은 귓속말로 이렇게 속삭인답니다. 그래도 세상에는 착한 사람이 더 많아..... 악이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선을 이길 수는 없어.....

 

백리향에는 벌과 나비와 여러 곤충들이 깃들어야 멋스러움이 더해지겠지요.

백리향으로 살지 못했을지라도 백리향의 삶을 소망하는 풀빛세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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