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108 / 네귀쓴풀

풀빛세상 2011. 7. 31. 18:09

 

 

 

 

뿌리가 쓰다고 쓴풀이요, 꽃잎이 넉장이라고 네귀쓴풀이라고 합니다. 한국에는 쓴풀, 자주쓴풀, 네귀쓴풀, 대성쓴풀, 개쓴풀, 큰잎쓴풀 여섯 종류가 자생하고 있으며, 이들 중 꽃잎이 넉 장인 것과 다섯 장인 것이 있네요. 차례로 찾아보니, 꽃잎이 넉 장인 것은 네귀쓴풀, 대성쓴풀, 큰잎쓴풀이 있고요, 다섯 장인 것은 쓴풀, 자주쓴풀, 개쓴풀이 있네요.

 

아내가 바깥일을 많이 하다보니 집안청소와 설거지 문제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집안 청소야 가끔씩 미루기도 하지만 설거지는 미루어 놓을 수가 없게 됩니다. 남편과 쌍둥이 두 아들이 번갈아 가면서 할 수밖에 없겠지요. 한 번씩 아들들에게 시키는 것은 꼭 그렇게 해야 한다기보다는 교육적인 차원이 있노라고 궁색한 변명을 갖다 붙이게 됩니다.

 

'얘야, 네 차례다.'

그때부터 애들은 '예, 알겠어요'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저들끼리 다투는 소리도 들립니다. '이번에는 네 차례가 아니냐? 너 언제 했냐' '나 어제 했단 말이야' 서로 상대방에게 떠 넘기려고 갖은 애를 쓰다가도 어느 순간이면 저네들끼리 교통정리를 할 때도 있고, 부모가 개입해서 중재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어느 순간 밥그릇 국그릇 그리고 접시가 하나씩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야~ 수상하다. 어째 밥그릇이 자꾸 없어진다.

제가 손이 크고 둔하잖아요. 어쩔 수 없어요.

큰 아들이 뾰루퉁한 표정으로 퉁명하게 내쏘았습니다.

 

귀에는 MP3를 꽂고 음악을 들으며, 헐렁한 장갑을 낀 손에 미끌미끌한 세제를 뭍힌 수세미를 들었습니다. 뚱한 마음으로 하다보니까 그릇들이 먼저 주인의 눈치를 보는 것이겠지요. 그렇게 해서 그릇들이 소리소문 없이 하나씩 둘씩 쓰레기통으로 사라져갔답니다. 아내는 남편의 옆구리를 콕콕 찌르면서, 흐이흐이 웃으며 아들들을 감싸기에 바쁘답니다. 그래도 착한 아들들이라고요.... 어느 날 아내는 시장으로 가서 비싼 돈을 들여 잘 깨지지 않는 그릇들을 구해왔습니다. 투명한 듯 흰색으로 통통 소리가 나는 것이 본차이나 그릇들이네요.

 

본차이나는 중국산의 고급 도자기인 줄 알았습니다. 그것이 아니고, 뼛가루를 섞어 구워낸 도자기류라고 하네요. 출신을 뜻하는 Born이 아니고 뼈라는 뜻의 Bone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차이나(china)는 중국이라는 뜻과 함께 도자기라는 뜻도 가지고 있네요. 그러니까 옛날 중국의 도자기가 유럽으로 수출되었을 때, 그때까지 도자기가 뭔지도 잘 몰랐던 그네들은 중국의 도자기를 차이나에서 온 물건이라는 뜻으로 차이나라고 불렀다네요.

 

영국에서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들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도 품질 좋은 도자기를 만들 수 있을까? 여러가지로 궁리하고 실험하던 중에 소뼛가루를 섞어보았다지요. 그렇게 해서 하얗고 투명하며 통 소리가 나는 단단한 도자기, 즉 뼛가루(bone)를 섞은 도자기(china)가 만들어졌답니다.

 

네귀쓴풀, 본차이나의 색감과 무늬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참 신기하지요. 어쩌면 꽃잎의 색감이 사람이 만드는 도자기의 색감과 무늬를 그대로 닮아 있을까요? 저 꽃잎을 살짝 두드리기만 해도 통통 소리가 들릴 듯 하지 않습니까? 오늘도 저 높은 산에는 온갖 꽃들이 그네들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면서 피고 지기를 반복합니다.

 

착한 척 하는 아들들이 부지런히 밥그릇을 깨는 덕분에 고급스런 본차이나를 사용하게 되었다는 사연과 함께 네귀쓴풀의 아름다움도 전해드립니다. 풀빛세상이었습니다.

 

 

 

습지에서 볼 수 있는 개쓴풀

 

 

늦가을의 오름에서 만날 수 있는 자주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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