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107 / 거지덩굴

풀빛세상 2011. 7. 26. 17:21

 

   

 

 

옆집에는 거지 식구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매일 아침마다 거지 옷을 입고 쪽박을 들고 구걸하러 나갑니다. 그들은 날마다 따뜻한 밥을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그들은 우리 식구들에게 보라는 듯이 문을 활짝 열어놓고 식사를 했습니다. 반면에 우리 집 식구는 모두가 다 이른 아침부터 밤이 늦도록 땀을 흘리며 근면하게 일을 했지만 세끼 밥도 제대로 챙겨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거지네 식구보다 더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오래 전에 읽었던 이명박 대통령의 자서전 '신화는 없다'의 내용 중에서 기억 나는 부분을 대략 옮겨보았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거지네 식구의 자녀들은 여전히 거지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근면성실하게 땀흘려 일했던 이명박 소년의 형제들은 모두 큰 인물들이 되었다지요.

 

거지덩굴이라는 식물이 있습니다. 누가 이름을 붙였을까요? 아무리 못난 모습이지만 거지덩굴이 뭡니까? 세상에는 좋은 이름들이 얼마나 많은데, 고르고 골라서 붙인 이름이 거지덩굴인가요? 누가 붙여준 이름인가요? 언제쯤이면 이름을 바꿀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부모님이 좋은 뜻으로 붙여준 이름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개명신청이라도 한다던데, 저는 안될까요?

 

거지덩굴의 꽃, 아무리 살펴보아도 꽃다움이 없습니다. 가을이 되면 까만 열매가 맺어지지만 그것 또한 빈티가 팍팍 느껴집니다. 빈티란 벗어버릴 수 없는 가난의 흔적을 뜻하는 단어이겠지요. 아무리 못난 꽃이라도 자기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고, 개성이 있고, 나도 꽃이요 외칠 수 있는 그 무엇을 감추고 있습니다. 화려한 꽃, 우아한 꽃, 맑은 꽃, 수줍은 꽃, 당당한 꽃, 앙증맞은 꽃 ...... 세상에는 꽃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이 덩굴과 꽃을 아무리 살펴보고 또 살펴보아도 적당한 수식어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들에는 거지덩굴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너무도 순하고 여린 줄기입니다. 콕콕 찌르는 가시도 없고, 잡아끌면 아무런 저항도 없이 딸려옵니다. 툭 잡아당기기만 해도 쉽게 끊어집니다. 들길을 지나가면서 수없이 마주치는 이 덩굴을 볼 때마다 서러움이라는 단어 이외에는 달리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네요. 순하고, 여리고, 착하고, 서럽고.....    

 

 

 

그래도 왕관을 썼습니다. 하늘님이 저를 만드실 때에 너는 거지가 아니라 왕이란다 하시면서 노오란 황금으로 빚은 왕관을 씌워주셨습니다. 한 송이 꽃이 필 때마다 왕관 하나씩, 이것이 저의 진짜 모습이랍니다. 그런데요, 사람들은 저의 겉모습만 살펴보고 듣기에 거북한 이름을 붙여주었네요. 만약 한 번이라도 제대로 살펴보았더라면요 저의 이름을 틀림없이 황금왕관덩굴이라고 불러주지 않았을까요?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식물들에게는 약효가 있겠지요. 거지덩굴 또한 성질이 차며 해독성분을 하는 성분이 있어 화농성 감염증, 외상, 습진, 피부염 등에 사용하면 염증이 제거되고 신생조직이 형성된답니다. 특별히 여드름에 좋은 효과가 있다는군요. 그늘에 말린 거지덩굴잎 두 줌 정도를 3컵의 물에 넣고 그 양이 반으로 줄 때까지 달여서 하루 세 번 나누어 마시면 효과가 있답니다.

 

 

열심히 꽃을 찍고 있는데 갑자기 개미 한 마리가 달려와서 진득한 꿀물을 정신없이 쪽쪽 빨아먹고 있었습니다. 왕관을 만들었던 꽃술은 떨어졌지만 찾아오는 이웃들에게 나누어 줄 꿀물 한 그릇은 남기고 있었네요. 나눔과 베품이란 부자들의 금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난하지만 인정이 살아있는 이웃들의 착한 마음씨로부터 나오겠지요. 거지덩굴, 줄기와 꽃과 열매를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꼭 이 풀꽃에도 고운 사연을 담아주리라 마음을 먹었지요.

 

 

세상에는 못난 사람은 아무도 없단다. 하늘님은 너를 땅의 왕같은 신분으로 내려 보내었단다. 착한 네 마음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노오란 황금의 왕관을 찾아 보렴. 그리고 누가 뭐라고 하든 나는 왕이다 외치면서 살면 어떻겠니. 서러움이 밀물같이 밀려올 때마다 하늘 그분을 바라보면서, 사랑나눔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면 어떻겠니.

 

거지덩굴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풀빛세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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