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106 / 으름난초

풀빛세상 2011. 7. 19. 11:44

 

 

  

 

지난 가을이었지요. 하늘이 맑고 고운 날, 지금은 육지로 가버린 친구와 카메라 하나 들쳐메고 오름 탐사를 했습니다. 막연하게 알고는 있지만 잘 알지 못하는 비탈길을 더듬으면서 이곳 저곳 헤매는 중에 으름난초의 붉은 열매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의 흥분과 설렘을 고이 안고, 내년에는 꼭 다시 찾아 꽃을 보리라고 했지요.

 

해가 바뀌어 초여름이 되면서 으름난초 꽃 피운다는 소식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곳을 찾아갔습니다. 그때에는 몇 개체가 있었던 것 같은데 딱 한 개체만 대를 올리고 싱싱한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처음 만났습니다.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어쩜 이렇게도 아름다울까 감탄사만 연발할 수밖에 없었지요. 찍고 또 찍고, 보고 또 보고, 돌아나오면서도 뒤돌아보면서 다시 보았습니다. 잘 자라거라. 제발 나쁜 사람들의 눈에 띄지는 말아다오.

 

으름난초, 제주도 한라산 1000m 이하의 수풀 아래에서 자라는 부생식물이며, 남해안에도 우거진 숲속 습기가 유지되는 곳에서 드물게 발견되기도 한답니다. 국제적으로도 멸종위기 2급에 해당되는 식물이라고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것도 강장제로 사용된다면서 캐 가는 사람이 있다고 하네요. 몸에 좋고 돈이 된다면 무슨 짓인들 못하겠습니까만 희귀한 것이니만큼 제자리에 자랄 수 있도록 각별한 보호를 해야 하겠지요.

 

부생식물이란 스스로 광합성을 못하기 때문에 썩은 식물 혹은 수북히 쌓여있는 낙옆에 뿌리를 내려 영양분을 얻어 자라는 식물입니다. 으름난초를 살펴보더라도 잎은 없고 꽃만 달려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기도 하지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을까요? 아름답다는 표현으로는 좀 부족하여 황홀하다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듯한 이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으름난초의 생태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푸른 잎이 없으니 광합성을 하지 못하고, 꿀샘이 없으니 벌과 나비가 찾아들 일도 없고, 그늘지고 축축한 숲 속에서 자라고 있으니 밝은 태양빛을 필요로 할 일도 없고, 썩은 낙엽에 뿌리를 내렸으니 제 자리를 떠나면 시들어버리겠지요. 그런데도 누구를 위해서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치장을 했을까요? 무엇이 그리워 밝을 태양을 향하여 꽃송이를 벌렸을까요? 때로는 이런 생각도 해 봅니다. 공연한 짓을 한다고요. 번식하기도 쉽지 않은 녀석이 곱게 치장하여 사람의 눈길만 끌고, 그래서 수난을 자초하는 것을 아닌가라고요.

 

여기에서 글을 정리하려고 하니 자꾸만 미련이 남게 됩니다. 뭔가 또 다른 사연이 없을까요? 아름답고도 슬픈 전설이라도 없을까요? 아니면 착한 사람들의 눈에만 보인다는 그런 신나는 이야기는 없을까요? 그러면 저도 이렇게 자랑할 텐데요. 음~ 나도 착한 사람이라고 으름난초를 보았거든..... 정말 착한 사람은 자기 자랑도 할 줄 모른다던데요. 지나가는 말이라도 제 자랑을 조금이라도 늘어놓는 순간 착함은 사라지고 착하다고 하는 허위의식만 남지 않을까요?

 

으름난초, 썩어가는 낙엽에 뿌리를 내려 맑고 아름다운 꽃을 피웠습니다. 누가 봐 주지 않아도 그 아름다운 자태로 그늘진 숲속 세상에 작은 불꽃을 밝히고 있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해가든지 맑고 고운 사람들이 곳곳에서 묵묵하게 자기만의 삶을 살아갈 때에, 비록 그 삶이 고달프다고 할지라도, 그만큼 세상은 맑아지겠지요. 밝아지겠지요. 살만한 세상이 되겠지요.

 

세상을 탓하지 말고 자기만의 길을 묵묵하게 갈 수 있다면 참 좋겠지요. 한여름의 더위에도 아름답고 행복한 꿈을 꾸는 풀빛세상이었습니다.

 

 

 

가을이 되면 바알간 열매가 달리게 됩니다. 모양은 작은 바나나를 닮았고요, 한국의 산골에서 볼 수 있는 으름열매와 비슷하지요. 그래서 으름난초라고 이름을 붙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