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105 / 닭의난초

풀빛세상 2011. 7. 17. 22:42

 

 

  

 

6월의 중순 어느 날 남쪽나라에 큰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인심이 흉흉해지고 감정이 거칠어지면서 격한 언어들이 나돌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이럴 수 있느냐! 사진을 찍는 것은 좋지만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느냐고 했지요. 앞으로는 무슨 꽃이 어디에 피어있느냐고 물어보지도 말고, 알려주지도 말아야 한다고 했지요. 그 사연은 이렇습니다.

 

닭의난초는 중부이남 지역의 양지바른 습지에서 자라는 식물입니다. 난초과의 식물들은 번식이 쉽지 않기 때문에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나마 그 아름다움에 반한 사람들이 포기 채 파가기 때문에 그 개체수가 점차 줄어드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어디에 무슨 난이 피었더라고 소문이 나면 카메라를 맨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서로 밀치며 사진을 찍어가겠지요.

 

그 아름다움을 찍어 간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난초들도 마냥 신나는 시간이 될 수도 있겠지요. 평소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심심했었는데 이 사람 저 사람 찾아와서 멋진 모습을 찍어준다고 카메라를 들이댈 때의 들뜸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식물들이 마냥 즐거워할 일은 아니겠지요. 사람들이 찾아와서 곁자리에서 친구하면서 살고 있는 주변의 식물들을 밟아버리고, 뽑아버리고, 잘라버립니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은 꺾이고 짓밟혀서 신음하다가 시들어버립니다. 그 모습을 지켜볼 때의 안타까움 슬픔 고통 그리고 통증을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생태라는 것은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는 특성이 있습니다. 어깨를 부대끼며 살아가는 이웃들과 치열한 생존경쟁을 하면서 동시에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는 특성이 있지요. 만약 하나의 식물에게 특혜를 베풀겠다고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해 버리면 좋을 것 같아도, 결국에는 그 식물도 생기를 잃게 될 것이요, 맑고 고운 아름다움마저 빛을 바래게 될 것입니다.  

 

누군가 닭의난초를 찍겠다고 찾아갔던 것 같습니다. 습지를 채우고 있는 고랭이와 여러 사초들을 짓밟고 싹둑싹둑 잘라버렸습니다. 그렇게 하면 사진을 찍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점차로 습지가 메마르게 되면서 단단해지겠지요. 습지가 메마르게 되면 닭의난초 역시 생존을 위협받게 됩니다. 그뿐 아닙니다. 주제를 살리고 더 아름다운 작품을 남기겠다고 뒤편에 자리잡고 있는 또 다른 닭의난초들을 싹둑싹둑 잘라버렸습니다. 누가 그랬을까요? 이와 비슷한 사건이 여기 이곳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랍니다.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들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른 봄 그늘진 숲속에는 변산바람꽃이 다투어 피기 시작합니다. 눈 속에 피어나는 변산바람꽃, 하얀 눈을 헤치고 살포시 피어오르는 하얀 꽃을 보노라면 감동이 저절로 밀려오지오. 이런 사진을 찍으리라고 두리번거리는데 저쪽에 한뼘 눈이 남아있더랍니다. 야~ 행운이다. 고생한 보람이 있다. 달려가서 살펴볼 때 뭔가 좀 이상하더랍니다. 그것은 눈이 아니라 눈의 흉내를 내기 위해서 뿌려놓은 소금이었다고 하지요.

 

은대난초는 숲속 그늘진 곳에서 껑충한 키높이로 자라게 됩니다. 그런데 누군가 초록의 풀밭에 질서정연하게 피어있는 꽃들의 아름다운 사진을 찍어올렸다지요. 모두들 와~ 탄성을 발하고 있을 때 눈매가 무서운 분들의 호통이 떨어졌습니다. 누군가 숲속에서 활짝 피어있는 은대난초를 싹둑싹둑 잘라와서 풀밭에 가지런히 세우고 사진을 찍었던 것이지요. 이런 비슷한 일들이 지금도 전국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답니다.

 

이야기가 길어지다보니 막상 제 소개가 늦어졌습니다. 토종닭의 벼슬을 닮았다고 해서 닭의난초라고 합니다. 무리지어 피어있는 모습을 찾아 찍었어야만 했겠지만 저도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해서 누군가의 안내를 기다리느라고 많이 늦어졌습니다.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후에 찾아가서 아직도 싱싱하게 남아있는 몇 송이의 늦둥이들을 찾아 찍어보았습니다. 꽃송이를 가만히 들여다 보십시오. 외국에서 들어와 힘도 기백도 없는 흰둥이 닭이 아니라, 기세도 등등하게 꼬끼오 소리치며 새벽을 깨우는 토종 장닭의 당당함이 느껴집니까?

작품을 찍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환경과 생태에 조금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를 간절히 부탁하는 풀빛세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