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102 / 갈매기난초

풀빛세상 2011. 7. 7. 17:29

 

 

  

 

멋을 아는 사람은 겨울 바다를 좋아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혼자 걸음으로 겨울의 바다를 찾아가면 찬 바람에 철썩거리는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고, 회백색의 갈매기들만이 우르르 우르르 몰려다녔지요. 심심해진 사내는 바닷가의 조약돌 하나 집어들어 휑하게 던져 본 후 머쓱해진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지요. 그 후로도 혼자만의 바닷가를 찾은 적은 있지만 멋을 알아서가 아니라 잠시나마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였겠지요. 가끔씩 이런 생각도 했을 것입니다. 누군가 사랑하는 이의 시린 손을 꼭 감싸쥐고 도란거리며 걷고 싶다고요..... 이제 반백이 되어버린 사내들이 그곳을 다시 찾아 갈 수 있을까요? 오랜 세파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그네들이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요? 

 

초여름 그 오름(제주의 기생화산)에 가면 야생의 난들이 다투어 피고 지기를 반복합니다. 제일 먼저 새우난초들이 피고, 그 후로 옥잠난초 나리난초 그리고 마지막으로 갈매기란까지 피어나게 됩니다. 그곳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며 행복한지요. 그렇지만 꼭꼭 숨어 그네들만의 행복을 누려야만하는 풀꽃들로서는 무척 성가시기만 할 것입니다. 또 한 명의 불청객이 늘었다면서요. 제발 우리를 내버려 두어 쉬게 해 달라고요.

 

아쉬움이 있다면 지방정부에서는 그곳을 트레킹코스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수풀에 이런 저런 야생난들이 있다는 사실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겠지요. 완만하고 부드럽고 그러면서도 우거진 수풀이 있으니 걷기에 좋고, 건강에도 좋을 것 같고 등등의 실리적인 이유를 말하겠지요. 오솔길을 넓히고, 중간중간에 폐타어이로 깔판들을 만들어 깔았고요, 곳곳에 쉬었다 갈 수 있는 나무 의자들을 가져다 놓았습니다. 길을 따라가면서 무성하게 자라던 나리난초들은 흔적도 없어진 사실을 알게 되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던지요.

 

그렇지만 그곳 수풀 속에는 하얀 갈매기들이 떼를 지어 쉬고 있었습니다.

어느 바닷가에서 날아왔을까요?

어떤 사연을 안고 여기에 깃들였을까요?

이제 활짝 피었으니 두 날개를 펴고 어딘가로 날아가야 하겠지요?

훨훨 힘차게 날아가고 싶은데요, 마음껏 날아다니면서 꿈을 이루고 싶은데요.

꿈꾸며 살리라, 사랑하며 살리라고 외는 듯 합니다.

 

갑자기 <리차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이 떠오릅니다.

높고 높은 그 하늘 위를 날아다니고 싶었답니다.

멀고 먼 세상을 찾아 가고 싶었답니다.

호기심이 꿈이 되고, 꿈을 이루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했답니다.

 

오래 전에 읽었기에 줄거리도 희미해져버렸습니다. 영화로도 나왔지요. DVD로 출시가 되었기에 몇 개를 구입해서 친구들에게 나누어 준 적도 있었답니다. 다시 찾아서 봐야겠습니다. 오늘 밤 갈매기의 꿈을 꾸며 푸른 하늘 흰구름 위를 훨훨 날아다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요즘 가끔씩 고민하게 됩니다. 배우고 가르치고, 이것이 하나의 이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삶의 실제가 될 수 있을까요? 꿈이 꿈으로 끝나지 않고 현실이 될 수 있을까요? 함께 가는 세상, 어깨동무하고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다면 참 좋겠지요?

 

바닷가에만 갈매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풀빛세상의 깊은 풀숲에도 갈매기가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