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99 / 두메대극

풀빛세상 2011. 6. 23. 12:35

 

 

 

두메대극이라고 합니다. 저번에 한라산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만났습니다. 그 길로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지만 거의 대부분 그냥 지나치고 말겠지요. 어쩌면 풀꽃들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고마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식물의 키높이는 겨우 한 뼘이 조금 넘을까요? 그 꽃은 너무 작아 보일듯 말듯입니다. 달팽이의 더듬이처럼 보이는 저 꽃술은 지나가는 개미의 더듬이를 반으로 잘라 붙여놓은 크기입니다. 그렇지만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창조주의 신비가 숨어 있는 듯 합니다. 누가 만들었을까? 어떻게 만들었을까?

 

들여다보는 꽃 세상은 너무 아름답네요. 황홀하기까지 합니다. 보지 않으면 모를까, 일단 보게 되면 발걸음을 옮길 수가 없고요, 집에 와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리움으로 떠나지 않습니다. 저 꽃의 아름다움은 한 순간입니다. 그 날 그 시간이 지나가면 다시는 저 모습 그대로를 찾을 수가 없겠지요. 물론, 꽃은 또 다른 아름다움으로 변신해 가겠지만, 저 순간의 아름다움은 영원 속의 찰나에 머물다 사라져갈 뿐입니다.

 

저 꽃에 무슨 사연이 있을까요? 아무런 사연이 없어도 좋을 듯 합니다. 그냥 숨막히는 그 순간의 아름다움을 엿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며 만족할 뿐입니다. 세월은 흘러갑니다. 아름다웠던 청춘의 시간들도 흘러 흘러 지나갑니다. 언제까지 지속될 것 같았던 젊음의 아름다움, 탱탱한 볼의 피부, 속에 감추인 핏줄마저 파란 색으로 흔적을 남기는 투명한 피부, 윤기 자르르 흐르며 찰랑거렸던 검은 머리카락, 호수 같이 맑아 한없이 빠져들 것만 같았던 눈동자, 손끝만 살짝 스쳐도 자릿자릿 전율을 일으킬만큼 예민했던 젊은 시절이 있었겠지요. 

 

 

그냥 좋았던 것 같습니다. 때로는 그것이 나르시즘일 수도 있었겠지요. 바라보는 세상이 '나를 위한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갔네요. 만만치 않은 세상살이에서 시달리면서 맑고 고운 영혼은 거칠어졌습니다. 아름다움은 허영으로 변해갔고요, 맑음은 혼탁함으로 옮겨갔고요, 사랑은 욕망으로, 본질을 잃어버린 순수에는 병색이 완연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너무도 짧은 순간 하늘 향하여 환하게 웃음짓다가 스러져가는 그 꽃들의 세계가 무척이나 부러울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스스로 위안을 찾으려 하지요. 그래도 세상은 아름답고, 인생은 살만하다고요. 오늘도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는 우리네 인생들, 구름 사이로 언듯 언듯 비취는 비취색의 하늘 향하면서 방긋 웃고요, 만나는 사람 손이라도 꼬옥 쥐어주면서 살기를 원합니다.

 

작고도 작은 풀꽃들의 아름다움에서 인생의 건강한 웃음을 찾고 하는 풀빛세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