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98 / 콩짜개란

풀빛세상 2011. 6. 22. 16:55

 

 

 

 

꽃 한 송이 찍겠다고 목숨 걸 일은 없겠지요. 그렇지만 호기심이라는 것과 사람 욕심이라는 것이 뒤엉키게 되면 발이 먼저 달려간다지요. 늘 나도 언젠가는 찾아 만날 수 있겠지라는 기대와 함께 이 사람 저 사람 찍어올리는 것을 보면서 시샘 보따리만 늘어갔습니다. 분명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고 하는데 알려주고 안내하는 이웃이 없으면 접근할 수 없는 것이 희귀한 꽃들의 세계이겠지요. 나도 보고 싶은데, 입맛만 다시는 세월을 제법 보내었더랍니다.

 

습하고 그늘진 제주의 숲으로 들어가면 콩짜개덩굴이라는 것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우람한 덩치를 자랑하는 고목이면 더욱 좋겠지요. 초록의 이끼가 폭신폭신한 융단처럼 뒤덮여 있는 곳이면 콩짜개덩굴도 함께 어우러지고 있습니다. 콩짜개덩굴이란 초록의 동글동글한 이파리의 모습이 꼭 콩을 닮아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겠지요.

 

콩짜개덩굴도 있지만 콩짜개난도 있습니다. 콩짜개덩굴은 어디에서든지 쉽게 볼 수 있지만 콩짜개난은 쉽게 만날 수 없는 희귀식물이라고 합니다. 둘 다 생존의 모습은 비슷하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고, 결정적인 차이는, 콩짜개덩굴은 100년을 기다려도 꽃을 피우지 않지만 콩짜개난은 해마다 작고 예쁜 꽃을 피우게 됩니다. 이것도 난초꽃으로 분류가 된다네요. 마음의 소원이 통했나요? 안내해 주는 분이 있어 험한 길을 찾아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이럴 때는 시간이 있다 없다 바쁘다는 변명거리가 통하지 않습니다. 한 번 기회가 영원한 기회처럼 여겨지거던요.

 

사륜구동의 지프차는 산길을 더듬거리며 올라갔습니다. 작은 공터에 차를 멈추고 미끄러운 계곡을 건넜습니다. 태풍에 쓰러져서 삭아가고 있는 커다란 나무가 가로막고 있기에 편한 길을 찾아 넘어가려고 했을 때 '그곳에는 뱀이 있어요. 그냥 넘어와요' 다급한 소리에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사람이 지나갈 때 도망가는 뱀은 독이 없지만, 독이 있는 뱀은 절대로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분위기 탓일까요? 말만 들어도 으스스한 느낌이 밀려들었습니다.

 

 

오르락 내리락 좁은 산길은 미끄럽기만 했습니다. 한쪽 방향으로 확 트인 능선의 윗부분에 수십 미터에 달하는 깍아지른 바위 절벽이 있었고, 그곳에 콩짜개란이 있습니다. 이미 여러 사람이 지나간 듯 발 디딜 틈이 다져져 있었습니다만 자칫 미끌어지기라도 하면 최소한 중상을 면하지 못할 높이였습니다. 최대한 몸의 안전을 돌아보면서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초점을 맞춘 후 대충대충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습니다. 제발 몇 점이라도 건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해서 사진을 찍고 작품을 만들었겠지요.

 

 

다행히 저쪽 비탈에는 우리의 눈높이에서 담을 수 있는  몇 개체가 있어 어느 정도 자세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고요롭기만 한 숲속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는 우리의 숨소리와 함께 철푸덕 철푸덕 카메라의 셔터음만 들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행복한 만남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비록 차를 세워놓았던 산길에서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지형이 거칠고 변화가 많으며 위험요소가 사방에 널려 있어 절대로 혼자서 찾아올 곳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곳에 숨어 있는 식물을 사람들은 어떻게 찾아내었을까요? 처음에는 한 사람이, 나중에는 여러 사람이, 그리고 숨죽여 시샘했던 저에게까지 알려졌겠지요.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행복이란 소원의 크기에 비례할까요? 한 번 행복이 영원한 추억으로 남겨져야 하겠지요. 아직도 만나지 못한 귀한 풀과 꽃들이 많기는 합니다. 어쩌면 평생 눈맞춤 한 번도 하지 못하게 될 풀꽃들도 많이 있겠지요. 그래도 올해도 몇 종류를 만났다는 흥분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그 장소를 알고 해마다 찾아 만나는 사람들의 기분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오랫동안 기다려 처음으로 만났을 때의 그 설레임은 심장박동의 콩콩거림으로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너무도 바쁜 세상살이에 너무 사치로운 시간이었나요? 항상 마음에는 이렇게 해도 될까라는 무거움도 있지만, 남들 다 찾아 만난다는데.... 라는 호기심 시기심 질투심 이런 것들이 뒤엉키어 있답니다. 마음 한 구석으로는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는 노랫말을 흥얼거리면서 보존해야 한다는 본능도 있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한 번이라도 예쁜 네 모습을 보여줄 수 없겠니라는 이기적인 욕망도 숨어 있답니다. 귀한 꽃님일수록 그곳에는 모순적인 생각과 가치관도 더 많이 뒤엉키게 되겠지요.

 

올해도 험한 길 달려가서 귀한 꽃님을 찾아 눈맞춤하며 행복했었던 풀빛세상이었습니다. 그 행복을 간접적으로나마 나누어 드리고 싶습니다.

 

아랫 사진은 콩짜개덩굴입니다. 제주의 숲속에서는 흔하지만 꽃을 피우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