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97 / 가지더부살이

풀빛세상 2011. 6. 22. 12:00

 

 

 

 

 

어두침침한 숲 속에 들어가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익숙하게 알았던 푸른 세상, 초록의 잎과 나무들, 푸른 하늘, 맑고 고운 꽃들이 아니라 숨어서 세상을 엿보기하는 식물과 곤충들을 만나게 됩니다. 바깥 세상에서는 빛을 향하여 경쟁하며, 누군가의 눈에 뜨이기 위해서 노력하고, 지나가는 벌이나 나비나 혹은 곤충이라도 찾아와 달라고 애걸하듯 색과 향을 드러내지 않습니까? 어떻게 하듯 많은 씨앗을 퍼뜨리며, 넓은 땅을 차지하며, 누군가로부터 더 많은 사랑을 받기 위해서 애를 쓰겠지요. 그렇지만 숲 속에서는 그런 경쟁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앞에서 인도하는 분을 따라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한낮이었지만 장마 구름 아래에 펼쳐진 숲은 어두침침하기만 했습니다. 제주의 화산석 위에는 숱한 세월을 지키며 살아온 이끼들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에 미끄럽기만 했지요. 기우뚱거리는 몸의 자세를 바로 잡으면서 조심 조심 한 걸음 또 한 걸음, 발 아래 무슨 신기한 것이라도 있을까 두리번 거리면서 앞을 향해서 나아갔습니다. 누군가 지나갔던 흔적들이 희미한 길을 만들기는 했지만 그것도 조심스레 찾아봐야 합니다. 

 

'이 부근인데, 여기쯤 있을텐데.... 잘 찾아보십시오' 안내하는 분의 말을 듣고 우리 모두는 보물찾기 하듯 숲속 땅바닥을 빠르게 훓기 시작했습니다. 습한 땅에 낙옆들만 쌓여 썩어가고 있었고, 중간 중간에 세월에 삭아 바삭바삭 부러지는 나뭇가지들만 눈의 뜨였습니다. 맑고 밝은 날 위로부터 내려오는 약한 태양빛에 생명줄을 이어가는 초록의 양치식물들도 드문드문 보였습니다. 그때 누군가 '아싸 여기에 있다' 소리를 치기에 일제히 달려갔지만 그곳에는 별다른 것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눅진한 낙엽들이 쌓여있는 틈 사이로 뭔가 하얀 것이 조금 삐져 나오기는 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지요. 그것 버섯 아닌가요? 

 

 

우리는 본능적으로 흩어지면서 그 부근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곳 저곳 제법 여러 군데에서 아주 작지만 하얀 생명체가 살고 있었습니다. 숲속의 어두움에 아직 적응이 안 되었을까요? 아무리 관찰하고 또 살펴보아도 별다른 신기한 것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곳으로 인도하신 분의 말이 들려왔습니다. 아주 귀한 것이니 잘 찍어두십시오. 다시 오기 어려울 것입니다. 충분이 찍어 가십시오. 카메라를 꺼내고, 삼각대를 세우고, 땅바닥에 엎드려 각자 자기가 담고 싶은 모델들을 찾아나섰습니다. 이럴 때는 이 분야에서 먼저 담아보신 분 곁에서  어떻게 담는지, 어떻게 작품을 만드는지, 어떻게 구성을 하는지 보고 배우는 것이 제일 좋겠지요. 그리고 그분이 먼저 담고 나면 그 자리를 차지하고 똑 같이 담기를 흉내내기라도 해야 합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어둡고 침침한 숲속에서 손톱크기의 이 작은 생명체를 어찌 담아낼 수 있을까요? 자칫 잘못하다가는 한 작품도 얻지 못할 수가 있거든요.  

 

 

누군가 '아이고 허리야~' 하는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우리 모두는 깔깔 웃으면서 엎드린 자세를 바르게 세우면서 주욱 허리 펴기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허리가 뻐근하네요. 한 번 셔터를 누르면 15초를 기다려야 딸깍 소리가 나면서 겨우 한 장의 사진이 찍히기도 합니다. 긴장된 순간들, 숨 한 번 내쉬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촛점 한 번 맞추기도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게 버섯 아닌가요? 아닙니다. 분명히 꽃입니다.

처음에는 하얀 기둥으로만 보였는데, 눈이 어둠 속에서 적응하기 시작했습니다. 마크로 렌즈를 들여다보면서 확인할 때 뭔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주 작지만 꽃송이처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꽃일까? 정말 신기하네. 어떻게 한 작품이라도 건질 수 있을까?

 

낙엽을 너무 긁어내지 마십시오. 사진 찍은 후에는 다시 덮어주십시오. 낙엽이 있어야 이것들도 생존할 수 있습니다. 들려오는 주의사항을 들으면서 우리는 부지런히 사진을 찍어보았습니다. 여기서는 '부지런히'라는 단어가 좀 어색하기만 하네요. 최선을 다해서라는 말이 적당하겠지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시간은 점점 흘러, 이제 갑시다는 소리가 들려왔을 때에도 마음의 미련은 여전히 그 자리를 맴돌고 있었습니다.

 

잠시이지만 낯선 세상을 여행하고 왔습니다. 지하 세계를 엿보고 왔다는 느낌일까요? 세상은 참 신비해요, 너무 많은 보물들이 숨겨져 있네요. 그렇지만 너무도 약한 생명체들, 꼭꼭 숨어 살고 있는 그네들, 찾아간 인간 손님들이 그네들의 평화를 깨뜨리지나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음에 다시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부디 오래 오래 번식하며 잘 살아다오.

 

숲 속에서 신비한 생명을 만나며 행복했던 풀빛세상 아름다운 세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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