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96 / 나리난초

풀빛세상 2011. 6. 20. 22:11

 

 

 

 

 

저 먼 나라,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산촌 마을에 세 아들을 키우며 살아가는 부부가 있었답니다. 아이들이 무럭무럭 잘 자라 어느듯 청년이 된 큰 아들, 하루는 부모님을 찾아와서 이렇게 말하며 집을 떠났다지요.  어머니 아버지, 저는 바다로 가서 배를 타는 항해사가 되겠습니다. 너른 바다를 마음껏 다녀보고 싶습니다. 

 

산촌의 부부는 무척 서운했지만 둘째 아들이 있으니 마음에 위안을 삼고 살기로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둘째 아들도 청년이 되었습니다. 하루는 둘째 아들이 어머니 아버지를 찾아와서 '저도 형처럼 바다로 나가서 멋진 항해사가 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휑하니 집을 떠나버렸답니다. 이제 셋째 아들이 남았습니다. 어느듯 나이가 들어가는 부부의 마음은 불안하기만 했습니다. 아니! 어찌 된 거야. 평생 바다라고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애들이 어찌 배를 탈 생각을 했을까? 셋째도 형들처럼 바다로 가겠다고 하면 누가 집을 지키며, 누가 우리를 돌봐줄까?

 

하루는 그 마을의 목사님이 집을 방문했다지요. 목사님, 첫째도 둘째도 항해사가 되겠다면서 바다로 떠나버렸는데, 셋째까지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될까요? 목사님, 셋째를 잘 타일러 바다로 나가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

 

목사님의 눈에 벽에 걸린 액자 하나가 띄었습니다. 목사님은 부부를 불러놓고 이렇게 말했다지요. 벽에 걸려 있는 저 액자를 떼어내십시오. 액자를 떼어낸 후에 셋째 아들은 산촌을 떠나지 않고 부모님을 모시고 잘 살았다고 합니다. 그 액자에는 넘실거리는 파도에 돛대를 높이 올리고 항해하는 멋진 배가 그려져 있었답니다. 바다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었지만 액자의 그림을 보면서 바다를 동경하게 되었던 것이었지요. 넘실거리는 파도, 윙윙 불어가는 바람에 펄럭이는 돛대, 그리고 배를 좇아가는 갈매기, 먼 바다 위로 뭉실거리며 피어오르는 뭉개구름, 이 모든 것이 아이들의 마음 깊은 곳에 새겨졌겠지요.

 

봄이 깊어가는 숲속에는 온갖 종류의 야생난초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그 중에 이름도 참 고운 나리난초가 있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저 멀리 대서양 바다를 항해하며 지구촌 곳곳을 누비었다던 상선을 떠올리게 합니다. 수십 개의 돛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습니다. 사진 속의 나리난초들은 꽃잎이 많지 않습니다만, 제대로 된 모델을 만나게 되면 수십 개의 꽃잎이 달려있답니다.  올해에는 당당한 모습의 나리난초를 담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몇 년 전에는 정말 당당한 나리난초를 만나 행복했던 적이 있었지요.

 

저에게도 두 아들이 있어 가끔씩 고민하게 됩니다. 나는 아들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을까? 긍정적인 모습, 진취적인 모습, 행복한 모습, 인생의 좋은 모델이 될만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까? 아니면 아빠를 통해서 부정적인 모습을 보고 배우면서 닮아가는 것은 아닐까? 벽에 있는 그림은 떼어내면 되고, 좋은 그림이 있다면 갖다 걸면 된다지만, 아이들은 알게 모르게 아빠 엄마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닮아왔을 것인데...... 가끔씩 이런 생각에 잠기다 보면 어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을 때가 있답니다.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다면 좋은 모습 보여야 할텐데요.

 

풀숲에 피어있는 풀꽃을 통해서도 보는 것의 영향력에 대해서 배우게 되는 풀빛세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