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95 / 노루발풀

풀빛세상 2011. 6. 12. 18:12

 

 

 

 

장마비가 시작한다는 날, 바깥이 훤하기에 방울새란이라는 풀꽃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남들은 다 찍어온다는 풀꽃이지만 아직 만난 적은 없었기에 호기심만 무성했습니다. 이번에 꼭 만나봐야지 마음 다잡고 내달렸지만 중간에 비가 주룩주룩 내렸고, 찾으려 했던 풀꽃은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 대신 풀숲을 헤매는 중에 노루발풀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왜 노루발풀이라고 할까요? 꽃 사진을 보면 쉽게 이해가 될 듯 합니다. 가운데로 주욱 삐져 나온 대가 노루의 다리 혹은 발을 닮아있네요. 아하~ 그래서 노루발 혹은 노루발풀이라고 하는구나.

 

사슴과 노루는 어떻게 다를까요? 굳이 구분하려고 하겠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긴 모가지, 까맣고 맑은 눈, 겁먹은 듯한 순한 모습, 길고 긴 다리, 쫑긋거리는 두 귀..... 한라산에서는 노루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연상태의 사슴을 볼 수는 없겠지요. 원래 사슴은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동물이 아니지 않습니까?

 

노천명씨의 사슴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왜 노루라고 하지 않고 사슴이라고 했을까요? 노루도 사슴과이기 때문일까요? 과연 시인은 사슴을 보기라도 했을까요? 시에서 나오듯이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쳐다보고 있는' 사슴을 본 적이 있었을까요? 어쩌면 이 땅에 흔했던 노루의 모습에 사슴이라고 하는 작가의 관념을 투영시킨 것은 아닐까요?

 

그 글을 한 줄 한 줄 다시 읽어봅니다. 그리고 그분이 살아갔던 삶의 모습들을 검색해 봅니다. 예민하고 곧은 성품으로 일제시대와 육이오라고 하는 험한 현실을 헤치고 살아갔네요. 사랑에도 실패했었네요. 중간에 정신의 지조를 지키지 못하고 흔들리기도 했었네요. 본인이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흙탕물이 튀었고요, 역사의 오물을 뒤집어 쓰기도 했었네요. 그래서 슬픈 자화상을 미리 예견하면서 그려낼 수밖에 없었을까요? 모순이 많은 인생이었기에 더 많이 절망했었으리라 봅니다. 겨우 사십육세를 살다가 병약한 몸으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풀숲 그늘진 곳에 숨어 살고 있는 노루발풀, 순백의 맑은 색도 있었고 분홍빛을 곱게 머금은 것도 있었습니다. 우뚝 대를 세우고 꽃을 매달았습니다. 꽃들은 모두 땅을 향하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예쁘다는 느낌보다는 꼿꼿함을 드높이고 있는 듯합니다. 소박하면서도 마음을 설레게 하는군요.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노루발풀 중에서 가운데 주욱 삐져 나온 노루다리가 없는 매화노루발풀이라는 꽃도 있다는데 만나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언제 제 눈앞에 매화를 닮은 매화노루발풀도 나타나게 될까요? 

 

노루발풀을 보면서 노천명씨의 사슴이라는 시를 감상하며 그녀의 생애를 잠시 엿보며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보는 풀빛세상이었습니다.

 

 

 

한라산에서는 눈이 맑은 노루를 자주 만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