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93 / 얼치기완두

풀빛세상 2011. 6. 7. 11:42

 

 

  

 

4월의 잔디밭 한 귀퉁이에 가면 아주 작은 바람에도 고개를 까닥거리는 풀꽃들을 만날 수 있지요. 그들 중에 얼치기완두와 새완두가 있습니다. 그네들의 꽃은 너무 작아 애써 눈여겨 찾지 않으면 눈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옆자리에 무성하게 자라는 살갈퀴의 10분의 1 정도, 밭작물인 완두의 100분의 1 정도가 될까요? 어쩌면 걸리버가 찾아간 소인국의 꽃들 중에서도 아주 작은 꽃이라고 해도 되겠지요.

 

얼치기완두와 새완두는 둘 다 식물의 모습은 비슷한데 꽃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얼치기완두는 분홍빛의 꽃을 피우고 새완두는 하얀 꽃을 피우게 됩니다. 너무 작은 꽃, 저것도 꽃일까 여겨질 정도이겠지만 '우리도 꽃이예요, 어엿한 꽃이랍니다. 무시하지 마세요'라고 아우성이라도 칠 것 같습니다.

 

얼치기완두, 얼치기라는 말뜻을 찾아보았습니다.

얼치기 1. 이것도 저곳도 아닌 중간치. 2. 이것저것이 조금씩 섞인 것. 3. 탐탁하지 아니한 사람

얼치기 양반, 얼치기 양복, 얼치기 도토리묵, 얼치기 취급, 얼치기 음악..... 등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얼치기완두라는 말은 '완두는 완두인 것 같은데....' 혹은 '완두 흉내만 내는 것이...' 이런 경멸의 뜻이 담겨있겠지요. 모양은 분명 완두꽃이지만 완두꽃들이 보기에는 '애개, 얘들은 뭐야?' 이렇게 생각하면서 손사래를 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눈을 부라리면서 밀쳐 내쫓아 버릴 것도 같습니다.

 

얼치기라는 말에 아릿한 아픔을 느껴봅니다. 주류에 속하지 못하고 주변에서 맴돌아야 하는 소외자들의 아픔이 전해져 옵니다. 스포츠의 세계에서도 메이저가 있고 마이너가 있지 않습니까? 메이저에 속하지 못하고 평생 마이너에서만 맴돌아야만 하는 선수들의 서러움도 있겠지요. 꿈은 있지만 그 꿈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의 한스러움도 있겠지요. 이것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 숨어있는 응어리들이 아닐까요?

 

때로는 주먹 불끈 쥐고 '나도 할 수 있다(Yes, I can do it)라고 외치며 달려가지만 훗날에 찾아오는 후유증도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남들은 다 되는 것 같은데 왜 나는.....' 이런 자학감에 시달릴 때도 있겠지요. 이럴 때 '나는 나다, 나란 말이야(Yes, I am)' 이렇게 외치며 내달릴 수 있는 자존감의 회복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곰곰 생각해 봅니다.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는(I can do)' 존재이기 이전에 '나는 나(I am)'라고 하는 존재의식의 회복이 중요하겠지요. 바로 여기에서부터 '나는 나' '너는 너'라고 하는 공동체성의 건강이 회복될 것 같습니다.

 

얼치기 얼치기.... 얼치기완두, 사람들이 뭐라고 불러주던 전혀 주눅들지 않고 4월의 들판 한 귀퉁이 오롯이 모여 밝게 살아가는 그네들을 보면서 뭉클한 감동을 느껴보았습니다. 그네들이 비록 계절의 여왕으로 행세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그네들만의 작은 행복을 꾸려가면서 꿋꿋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찬바람도 따가운 태양빛도 견디면서 한 세월 한 세상 살아갑니다. 밝은 날 실눈 뜨고 바라보는 세상이 참 아름답다고 하면서요. 곁자리하는 이웃들이 소중하고요, 날마다 부대끼면서 살아가는 가족이 소중하고요,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고 하면서요.

 

작은 풀꽃들의 세상에서 존재의 회복과 건강성을 찾아보는 풀꽃세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