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속의 이야기

풍경 속의 이야기 6 / 누가 아기소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 줄 수 있을까요?

풀빛세상 2011. 2. 8. 17:23

 

 

 

 

길고 길게만 느껴졌던 겨울의 추위가 한풀 꺾이는 날,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이 토닥토닥 땅을 적시기 시작했습니다. 어미소와 아기소를 보았습니다. 아기소의 얼굴을 반쯤 적시는 빗물을 보면서 아기소의 눈물이 떠오르기에 차를 세우고 한 컷 찍어봅니다.  

 

구제역이라고 하는 가축의 악성 전염병이 온 세상을 휩쓸고 있다지요. 벌써 300만 마리가 넘는 소와 돼지가 살처분당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소와 돼지의 30% 이상이 매몰되었다지요. 자식같이 키운 소를 죽여 파묻는 모습을 견디지 못한 할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도 하지요. 워낭소리라고 하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우리의 가슴을 훈훈하게 적신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요, 세상에 왠 날벼락이 떨어졌을까요?

 

깊은 사정이야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이 재앙도 알고 보면 우리 인간들의 탐욕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아닐까요? 저의 아버지 시절에는 이런 일들이 없었거든요. 그때는 가축이 가족의 일부분이었습니다. 이른 아침이면 소 고삐를 몰고 밖으로 나가 이슬 맺힌 풀들을 뜯게 했습니다. 한낮의 더위 때에는 나무 그늘에서 쉬게 했습니다. 너무 너무 더워 사람도 소도 헉헉거릴 때면 냇가로 끌어가서 목욕을 시켰습니다. 추운 겨울에는 따끈한 쇠죽을 맛있게 끓여 영양을 보충해 주었습니다. 명절 때에는 주인이 먹는 밥과 나물을 퍼다가 '소야 먹으라'고 하면서 가져다 주었습니다. 농사철이면 소들의 코에서는 흰거품이 일면서 주인과 함께 가쁜 숨을 몰아쉬었지요. 저녁이면 맘씨 좋은 주인은 수고했다면서 소를 토닥거려주고 쓰다듬어주고..... 그런 날에는 여물통에 콩 한 줌이라도 더 집어넣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지요. 비좁은 곳에 빽빽하게 집어넣은 후 움직이지도 못합니다. 주인의 정성이 깃든 여물이 아니라 공장에서 만들어진 사료를 먹어야 합니다. 주인들의 사랑이야 여전할 것 같지만, 예전 지게 지고 다니면서 베어다 주었던 싱싱한 초록의 풀맛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때야 산과 들로 뛰놀다보면 저절로 면역력도 생기고 건강해졌는데요, 요즘은 온갖 항생제로 겨우 겨우 버티고 있겠지요. 그때보다 몸집도 더 좋아지고, 살코기도 훨씬 많아지고, 우유의 생산도 많아졌다고 하지만, 그렇지만 체력은 예전만 못한 것을 어떡합니까?

 

어미소를 살처분 하던 날, 철없는 애기소가 어미소의 젖을 찾아 물었지요. 어미소는 흐려지는 의식과 뻗뻗해지는 몸을 최대한 버티면서 애기소에게 젖을 다 먹였다지요. 만족한 아기소가 떨어지는 순간 어미소는 철버덕 땅바닥으로 쓰러져 숨을 거두었답니다. 그 모습을 보던 사람들이 눈시울 적시면서 고개를 돌렸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날 아기소도 살처분 당하여 어미소 곁에 묻혔답니다.

 

누가 아기소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