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속의 이야기

풍경 속의 이야기 8 / 선을 찾아서

풀빛세상 2011. 5. 29. 17:12

 

 

 

 

 

사진교실에서 이번 한 달 동안 선(線)을 찾아서 찍어보라고 합니다.

한달 내내 선을 찾느라고 이곳 저곳을 기웃거려 보았습니다.

하늘을 보면서 비행가 구름이라도 지나가는가?

전선줄을 보면서 저것도 찍어볼까?

풀들을 보면서 뱅뱅 말린 것은 없나?

어디 거미줄이라도 멋들어진 것이 없나?

아파트를 보면서 아래서 위로 찍어봐?

온통 선은 선인데 무엇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참 어려웠습니다.

선이라고 다 똑같은 선은 아니겠지요.

선을 찾아서 찍어보라는 것은

일단 멋들어진 선이거나 뭔가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선을 찾아보라는 뜻이겠지요. 

 

사물의 가장 기초 단위는 점이라고 하겠지요. 점이 모여서 선을 이루고, 선이 모여서 면을 이루고, 면이 모여서 입체를 이루고, 입체들이 모여서 세상을 만들어가겠지요. 그렇지만 이것이 단순하지 않은 것은, 하늘 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입체로 된 세상일지라도 면으로 변하게 될 것이요, 우주 저 멀리서 보면 지구도 하나의 점이 될 뿐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점 선 면 입체 공간으로 구분하는 우리의 이성적 작용이 얼마나 주관적이요 제한적인지요.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입체는 평면이 될 뿐이요, 평면은 한 줄의 선으로 표현되겠지요. 이것은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입체와 공간 속에 있는 선들을 어떻게 찾아 표현해 내는가의 문제가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미술사를 공부해 보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만, 한국 중국 일본이라고 하는 동양 삼국의 미(美)는 무엇일까 곰곰 생각해 봅니다. 일단 중국은 규모의 미를 자랑하는 것 같습니다. 그 무엇이든 크고 웅장하게 만들어져야 합니다. 대국의 자존심일까요? 만리장성, 자금성, 황하, 양쯔강, 그리고 이름 모르는 거대한 산맥들과 사막들, 그 어느 것 하나도 작은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일본의 미는 무엇일까요? 그네들 세상을 살아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상식적으로 판단할 때에, 그네들은 일단 작고 아기자기하고 그리고 그 작은 것에 알록달록한 색채를 입히고 있습니다. 포장지 하나, 음식 한 점이라도 알록달록하지 않은 것이 없다면, 일본의 미는 일단 색의 미학이라고 해도 괜찮을까요? 물론 일본인들은 큰 것을 작게 만들어내는 축소의 미학이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게 됩니다만.

 

그러면 우리 한국의 미는 무엇이며, 무엇을 특징으로 하고 있을까요? 수천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민족의 미적 특징을 한두 마디로 정리할 수 있을까요? 저 멀리 신라의 왕관을 보면 현란함을, 고구려의 벽화들을 보면 웅혼함을, 백제의 건물들을 보면 단정함과 중용을 느껴보게 됩니다. 고려의 맑은 청자빛과 그 속에 그려진 정교한 문양들을 보노라면 귀족사회의 사치로움을 느끼게 됩니다만, 조선으로 넘어오게 되면 모든 것이 원시로 되돌아간 듯한 착각 속에 빠져들게 됩니다. 백성들의 문화를 대표하는 백자항아리, 선비들의 문화를 상징하는 수묵담채화, 그리고 이어질듯 끊어질듯 연결되는 아리랑 고개의 운율..... 가끔씩 조선의 문화를 접할 때마다 신석기 구석기의 시대로 되돌아가는 듯한, 때로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속으로 빠져드는 묘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요,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할 때에, 한국의 아름다움을 한 마디로 정리한다면 선(線)의 문화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삼천리반도 금수강산이 보여주는 아기자기한 선들의 멋드러짐이 있습니다. 산은 산으로 이어지고, 골은 골을 만나 휘감아가는 선들의 멋스러움, 그곳에 하얀 안개라도 자욱하게 자리를 잡는다면 선경(仙景)이 따로 있을까요? 비취색 고운 고려청자에서 미끌어져 내리는 선을 보지 못한다면 말이 안되겠지요. 조선의 백자 항아리, 투박하면서도 둥글고 원만한 것이 달을 닮아있다고도 합니다. 선비들의 붓끝에서 흘러내리는 수묵의 그림들은 농담(濃淡)과 선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끗 두 끗 흘러내리는 무채색의 선에서 선비들은 요란함을 버리고 고요로운 정신의 세계를 추구했었겠지요. 

 

한국 서민들이 살았던 초가집은 하늘을 향하여 볼록하게 지어졌고요, 사대부들이 살았던 기와집은 땅을 향하여 오목하게 지어졌습니다. 특별히 한국 전통 기와집의 멋스러움은 세계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함이 있다고 하지요. 하늘을 향하여 휘어지는 곡선은 모든 세상을 품어 안을 듯 합니다. 그리고 여인네들이 신었던 버선과 입었던 한복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위로 비쭉 튀어나오는 버선코와 그곳으로 연결되는 곡선의 미끌어짐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한반도의 하늘과 땅과 산과 강과 바다의 어우러짐이 한 줄의 선이 되어 여인네의 발끝에 걸렸겠지요.

 

그런데요, 요즘 세상을 둘러봅니다. 그 멋들어진 선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도시에는 선들이 사라졌습니다. 선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날카롭고, 단절되고, 우중충하기만 합니다. 길과 건축물과 그리고 그 사이로 줄지어 달려가는 자동차들이 미로의 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의 본질을 정의한다면 정신의 표현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누군가 정신이 없으면 죽은 민족이라고 말했다지요. 정신은 혼이요, 한국인의 혼은 흘러내리는 선에서 찾을 수 있었다고 담담하게 정리해 봅니다. 오늘도 한국인의 선을 찾아 세상을 두리번거리는 풀빛세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