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87 / 등심붓꽃

풀빛세상 2011. 5. 17. 18:48

 

  

 

저만치서 새내기 여학생 셋이 도란거리며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윤희 선희 영희 셋, 희자 돌림으로 끝나기 때문에 희트리오로 행세하며 모여 다니는 후배들이지요.

선배님 ! 천재는 악필이라면서요? 얼굴에 웃음을 잔뜩 담은 윤희의 밉지 않은 농담이었습니다.

야! 천재라고 다 악필은 아니다더라. 까칠한 성격의 왕언니 영희의 툭 쏘는 말이었습니다.

훗날 '악필이 아니라 졸필이야' 직장 상사의 이 말 한 마디에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는 충격을 받았지요.

 

천재는 스치며 지나가는 생각들을 원고지에 가두어 놓느라고 글씨를 휘갈겨 썼다지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악필이 되었지만, 그네들의 원고지를 살펴보면 나름대로 일정한 규칙이 있지요. 아마 졸필이라는 말에는 이런 리듬이 없다는 뜻이 아닐까요? 그래도 그렇지, 말 한 마디로 직장 후배의 기를 꺾어 놓을 것이 뭐람.....

 

서당글 조금 배웠던 아버지는 아들을 앉혀놓고 반듯한 글씨를 써 보이면서, '애야, 네 글씨가 그게 뭐냐?'고 실망스러워했지요. 객지생활을 하고 있는 아버지의 큰 아들이 가끔씩 편지글을 보내왔습니다. 항상 '부모님 전상서'로 제목을 달고 그 아래로 구구절절 인삿말을 붙인 후 본론으로 들어갔었지요. 어머니 앞에서 형의 글을 읽어드리는 것은 항상 작은 아들의 몫이었습니다. 동생이 보는 형의 글은 명필이었습니다. 휘갈겨 쓴 듯 흘러내리면서도 반듯함이 있어 아름다웠지요. 왜 나는 이런 글씨를 못 적을까?

 

세월이 흘렀습니다. 더 이상 펜을 사용하지 않고 컴퓨터 자판 앞에 앉아서 노닐고 있는 아들의 글씨는 지렁이가 기어가는 듯 합니다. 야! 글씨 좀 크게 써라. 그게 글씨냐 뭐냐? 졸필 아버지의 눈에도 아들의 글씨는 어색하기만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졸필의 대물림이 이어지고 있는 걸까요?

 

꽃이 벌어지기 전 다소곳한 모습이 먹물을 머금은 붓을 담았다고 해서 붓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꽃이 있습니다. 물가에서 자라는 창포꽃과 비슷하게 생겨 구분이 애매할 때도 있었습니다. 붓꽃이나 창포꽃은 모두 키가 5,60cm 쯤 됩니다만, 야산 풀과 햇빛과 바람이 그윽한 곳에는 한 뼘 크기의 각시붓꽃이 작은 가족을 이루면서 살고 있고요, 희귀하지만 금빛이 아름다운 금붓꽃도 있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저 남쪽나라 탐라국에서는 정말 작고도 작은 꽃들이 밝은 하늘을 향하여 환하게 웃으며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국제화 시대를 맞이하여 멀고 먼 나라에서 씨앗이 묻어와서 퍼뜨려졌지요. 아마도 그네들이 살던 곳과 한반도의 남쪽 섬나라의 기후환경이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오월이 되면 태양빛 잘 드는 풀밭에서 작은 바람에도 고개를 까닥거리며 춤을 추는 앙증맞은 이 꽃들을 만나게 됩니다. 곁에 앉으면 꽃의 요정이 나와서 함께 춤을 추자고 할 것만 같습니다.

 

등심붓꽃, 등심이라는 말은 아마도 등잔의 심지라는 뜻에서 나왔겠지요. 붓을 담았다고 한다면 아마 옛 선조들이 필기구로 사용했다던 세필이 되겠지요. 닥나무로 만든 하얀 종이 위에 그 작은 필을 휘갈겨 명품의 글씨를 썼다던 옛 조상님들을 새삼스레 우러러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글씨를 잃어가는 이 세대의 아들들을 안타까워하게 됩니다.

 

등심붓꽃을 보면서 옛 선조들의 명품 세필 글씨를 떠올려보는 풀빛세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