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86 / 백양더부살이

풀빛세상 2011. 5. 17. 00:38

 

 

 

 

 

 

백양더부살이를 만나고 왔습니다. 이 꽃을 찾아 만나기 위해서 잘 알지 못하는 분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 꽃을 만나고 싶은데 어디 있는지 알려줄 수 있느냐의 부탁에 어디쯤 가면 있을거라는 말만 듣고 부지런히 찾아 가서 넓고 넓은 그 지역을 찬찬히 더듬었습니다. 바닷가 곁이라서 5월의 시원한 사람이 살랑살랑 불어왔고, 옛날 일본군의 비행장으로 사용되었던 너른 벌판에는 개구리갓과 양장구채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고요, 반뼘 높이의 등심붓꽃이 꽃바람을 일으키고 있었지요. 그 외에도 이런 저런 풀꽃들이 제각각 자기의 자리를 지키면서 오월의 태양빛이 내려주는 축복을 즐기고 있었지요.

 

막연했습니다. 그 어디에 찾는 풀꽃이 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장소를 잘못 찾아 헛다리를 짚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만나지 못해도 하는 수 없지 뭐. 약간의 실망감과 함께 거의 항상 혼자 다니면서 더듬거려야 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 쓸쓸해졌습니다. 그래, 이꽃은 쑥에 기생한다고 하더라. 쑥이 있는 곳을 찾아보자.

 

쑥이 더부룩하게 무리지어 자라고 있는 곳에 갑자기 낯설면서도 익숙한 풀꽃이 나타났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찾아 들어왔기 때문에 접사렌즈도 삼각대도 차에 두었고 카메라에 기본 렌즈 하나 물려습니다.  하는 수 없지요. 일단 풀밭에 엎드려 곁자리하면서 어깨동무하는 다른 풀꽃들을 눌러 밀쳐내고 백양더부살이가 도드라지게 한 후 찰칵찰칵... 몇 컷을 찍었습니다. 이상하게도 마음은 차분해지면서 전혀 흥분이 느껴지지도 않았습니다. 그토록 애써 찾아 만났는데도 말입니다.

 

이제 돌아가야지. 돌아가면서도 쑥들이 모여있는 곳을 눈으로 더듬거렸습니다. 더 많은 개체가 눈에 뜨였습니다. 아~ 저기도...... 또 엎드려 대충 풀들을 정리하면서 몇 컷을 얻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진을 찍는 것도 좋지만 곁자리하고 있는 풀들을 밀쳐내고 있는 것이 횡포로 여겨졌습니다. 일어서 나오면서 뒤돌아보았습니다. 엎드렸던 자리, 발길이 지나온 자리가 흔적으로 남았습니다. 

 

백양더부살이는 세계적인 희귀식물이라고 합니다. 1923년 일본인 학자 나카이 다케노신이 내장산에서 한 포기를 채집한 뒤 멸종한 것으로 여겨졌으나 2003년 다시 발견되어 학계에 정식으로 보고되었다고 합니다. 쑥 뿌리에 기생하는 이 식물은 하천변 높은 지대의 볕이 잘 들고 건조한 곳에서만 사는 까다로운 생태를 지니며, 삼림청의 희귀 및 멸종위기 식물로 지정되어 있으나 표본 자체가 드물어 관련연구가 없을 뿐 아니라 도감에도 올라 있지 않은 상태라고 합니다. 다행히도 제주도의 한 귀퉁이 지역에서 이곳 저곳 발견되고 있으니 당장 멸종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특별한 보호를 필요로 하는 것 같습니다.

 

백양더부살이란, 내장산의 백양산 부근에서 처음 발견되었으며, 푸른 잎이 전혀 없기 때문에 광합성을 할 수 없어 더부살이를 해야 하는 식물 즉 기생식물입니다. 특이하게도 쑥뿌리에만 기생하고요, 이와 비슷한 것으로 인진쑥에 기생하는 초종용이라는 식물도 있습니다.

 

이참에 초종용도 만날 욕심이 있었지요. 그래서 초종용은 어디서 만날 수 있는가요 물어보았을 때 다음과 같은 메마른 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들려왔습니다. '한 개체가 있었는데 누군가 삽으로 퍼 가버렸다고 합니다.' '아니, 그런 일이, 그럴 수가, 누가 그런 짓을...' 저도 말을 잇지 못했지요. 야생화를 찍는 분들이라도 서로가 익숙한 사람이 아니면 어디에 있는지를 물어보는 것이 실례가 됩니다. 서로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믿을 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이겠지요. 혹시라도 그 풀꽃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더라는 말이라도 돌면 공연히 알려주었다는 자책감이 들기도 하겠지요.

 

행복한 오후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를 만나주었던 그 풀꽃들에게는 한없이 미안한 순간이었고, 약간의 힌트라도 알려준 그분에게는 한없이 감사할 따름이지요. 욕심을 버려야지 하면서도 아직도 만나지 못한 풀꽃들이 많아 욕심은 버릴 수가 없네요. 버려야지, 버려야 하느니라 하면서도 마음 속 한 구석에서는 그래도 한 번씩은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호기심과 열망은 식어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희귀한 것일수록 보호를 받아야만 하고, 한 번 사라지면 영원히 소멸될 수도 있는 연약한 풀꽃들의 생태에는 조심스러워질 뿐입니다.

 

어쩌면 우리들의 무관심이 풀꽃들을 보호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는 풀빛세상이었습니다.

 

 

 백양더부살이는 꽃 안에 하얀 것을 물고 있어 초종용과 구별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