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76 / 개불알풀

풀빛세상 2011. 4. 7. 17:02

 

 

 

 

 

그네는 참으로 어려운 숙제를 안겨주었습니다. 이 작은 꽃에서 무대 위에서 춤추는 발레리나를 찾아서 표현해보라고 했습니다. 그와 함께 블랙스완을 보라고도 합니다. 먼저 블랙스완이 무엇인가 검색해보니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의 제목이었습니다. 블랙스완,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흑조(黑鳥)'가 되겠지요.

 

영화의 줄거리를 간략하게나마 살펴보면, 고전적인 백조의 호수에 식상한 극장 총감독이 관객들에게 새롭고도 감동을 줄 수 있는 발레를 만들기 위해서 각색을 하게 됩니다. 원래 백조의 호수는 마지막이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되겠지요. 그런데 각색된 백조의 호수에는 검은색의 백조(검은색이니까 더 이상 백조일 수가 없어 흑조라고 했겠지요)가 중간에 훼방을 놓기 때문에 지고지순한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는 그런 내용이 되겠지요.

 

줄거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요, 가련하고도 아름다운 여주인공은 백조의 청순함과 흑조의 사악함을 한꺼번에 표현해야 하는 너무나도 부담스러운 역할을 떠맡게 되었답니다. 신화의 자리에서 이제는 무대 뒤로 사라져 가야하는 전임자의 비애와 호시탐탐 배역을 탐내고 있는 경쟁자와의 치열한 갈등, 그리고 완벽한 무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극한의 압박감이 긴장, 충격, 스릴러, 광기, 반전 등등의 장면으로 연결됩니다. 그렇지만 영화 자체는 날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것 같아서 부담스러웠습니다.

 

주어진 숙제를 풀어내기 위해서 며칠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많은 시간을 낼 수도 없고, 멀리 갈 수도 없어 집 가까운 곳 중에서 이 작은 꽃들이 무리지어 있는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조금 비슷하게 표현이 되었는가 모르겠네요. 사진을 찍고, 잘라내기를 하고, 색감을 조절하고, 이런 과정을 거치니 조금씩 형태를 갖추어 가는 것 같습니다만 그네는 얼마나 후한 점수를 매길 지는 모르겠습니다.

 

예술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이 작은 풀꽃 사진 하나를 표현하기 위해서 짧은 시간이지만 이토록 애를 써야 하는데, 그네들은 무대 위의 춤사위를 제대로 풀어내기 위해서 얼마나 힘든 노력을 하고 있을까요? 세계적인 발레리나의 발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뭉개지고, 비틀어지고, 휘어지고 도무지 우아하게 춤추는 분의 발 같지 않았습니다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이라고 말하지요. 그네들을 잘 알지도 못하고, 그네들의 춤사위에 초대받은 적도 없지만, 이 순간이나마 그네들에게 박수갈채를 짝짝짝 보내고 싶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예술가가 되리라고 일기장에 다짐했던 소년이 있었지요. 치열하게 살아서 뭔가를 이루어 가리라고 했지요. 자유와 방종이 아니라 진지한 삶의 열매를 남기리라고 했었지요. 소년도 이제는 반백의 중년이 되었으나, 이룬 것은 없고 세월만 흘러 갔다고 아쉬워할 때도 있지요.

 

꽃이 진 후에 아주 작고 작은 씨앗이 개의 뭣 같다고 해서 개불알풀이라고 이름 붙였다네요. 제 눈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 그 작고 작은 씨앗을 우리의 선조들은 어떻게 찾아 관찰을 했을까요? 참 신기하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이름에 부담을 느낀 분들이 봄까치꽃이라도 개명을 해서 부른다고 하는데, 봄날의 까치들이 풀밭에 앉아 깡총거리는 모습에 연결시키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개불알풀, 봄까치꽃, 어느 쪽이 더 어울릴까요? 저는 둘 다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풀꽃들의 꿈꾸는 시간에 우리네 삶도 더욱 아름답고 행복해지기를 바랍니다.

꿈꾸는 세상, 풀빛세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