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75 / 산자고

풀빛세상 2011. 4. 1. 21:45

 

 

  

 

 

 

옛날 옛적 시골의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유식한 말로 하면 모두가 다 죽마고우요 시골스럽게 말하면 부랄친구들이었지요. 아직 선생님의 권위가 살아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애들은 애들인지라, 선생님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다가 어느 순간 애들은 청개구리의 합창을 하게 됩니다. 선생님~ 이야기 하나 해줘요. 근엄한 모습을 연출하던 선생님의 입가에도 어느듯 잔잔한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답니다.

 

옛날 옛적에~~ 어느 고을 깊은 산중에 산적들이 살고 있었어요. 이들은 가끔씩 마을에 내려와 사람들을 괴롭히고, 양식도 빼앗아가고.... 그렇지만 마을의 원님도 어찌 할 수가 없어 골머리를 앓고 있었데요. 워낙 산도 깊고 험한 곳에 숨어 살고 있으니 .....

 

어느 날 그 깊고도 깊은 산중에 할머니 한 분이 '나자고야~ 다자고야~ 나자고야~ 다자고요~' 온 산이 울리도록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다녔데요. 산적이 얼른 할머니를 잡아 두목 앞으로 데려갔데요. 눈이 부리부리하고 험상궂은 산적두목이 무쇠솥 깨지는 소리로, '할멈~ 이 산중에서 무슨 짓이요?' 그러자 할머니가, '아이고, 두목님, 살려주십시오. 저에게 나자고와 다자고라고 하는 두 아들이 있는데, 갑자가 사라졌어요. 이 산에서 길을 잃었는가 찾으러 나왔다우..... 아이고, 나자고야~ 다자고야~ 아이고, 나자고야~ 다자고야~....'

 

어느듯 저녁이 되고 밤이 되었데요. 산적들이 모두 잠든 것을 확인한 할머니가 밖으로 나가서 이렇게 외쳤지요. '다자고야~ 다자고야~' 그러자 숨어 기다리던 관군들이 우르르 달려들어와서 쿨쿨 깊은 잠에 빠져있는 산적들을 모두 꽁꽁 묶어서 끌어갔데요. 다자고라는 말이 '다 자고 있다'는 뜻이었지요......

 

선생님의 구수한 옛날 이야기에 눈을 말똥거리며 듣고 있던 애들이 모두 박수를 쫙쫙쫙 치면서 좋아했지요. 이렇게 해서 또 한 시간의 아름다운 영상이 애들의 추억 속으로 저장되었답니다. 함께 졸며, 함께 뛰놀며, 함께 선생님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거렸던 옛친구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다들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왜 산자고를 볼 때마다 옛날 선생님의 이야기가 떠오를까요? 위에 있는 글에서 '나자고'를 '산자고'로 고쳐부르면 이렇게 되겠지요. '산자고야~ 다자고야~.' 어쩌면 선생님이 '산자고'라고 해야 할 것을 '나자고'라고 잘못 말했던 것은 아닐까 혼자서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펼칠 때마다 지혜로운 할머니의 소리가 봄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듯 합니다.

 

산자고라고 합니다. 지역에 따라서는 '물굿, 까치무릇'이라고도 한답니다. 우리의 산야(山野)에서 저절로 자라나는 식물들이면 이런 저런 약효들도 있을 것이요, 동의보감 어느 페이지에 약효 몇 줄은 기록되어 있겠지요.  검색해보니 종기, 부스럼, 임파선염 등의 치료에 쓰며.말린 비늘줄기를 자양강장제로 쓴다고 되어 있습니다.

 

산자고, 제가 무척 좋아하면서도 봄이 되면 올해도 꼭 만나야지, 잘 찍어줘야지 마음 설레게 됩니다. 올 봄에도 숙제 하나는 끝마친 것 같으네요. 산자고를 볼 때마다 중세의 귀부인을 떠올리게 됩니다. 빳빳하고 새하얀 옷에 갈색을 띈 보라색의 줄무늬를 넣어 품위를 더했습니다. 속에는 노란 꽃술을 품었습니다. 요란스럽지 않고, 화려하지도 않고, 그러면서도 태양빛이 맑은 날이면 하늘을 향하여 꽃잎을 벌렸습니다. 맑음과 멋스러움이 어우러졌습니다. 소박하면서도 멋을 잃지 않았습니다. 아름답되 천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꽃이 더더욱 마음에 와 닿는지 모르겠습니다.

 

멋과 품위, 소박함과 화려함이 어우러지는 풀꽃들의 이야기, 풀빛세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