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71 / 개미자리

풀빛세상 2011. 3. 18. 16:19

 

 

  

  

개미자리라는 꽃이 있지요. 그네들도 일가 친척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개미자리, 갯개미자리, 큰개미자리, 분홍개미자리, 유럽개미자리, 너도개미자리 등등..... 그 중에서 오늘은 들개미자리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다른 꽃들은 제 힘이 자라는 한에서 앞으로 차근차근 찍어 소개할 날들이 있겠지요.  

 

며칠 전, 점심을 챙겨먹은 후 잠시 운동을 겸해서 집 주변을 산책하기로 했습니다. 일종의 자투리 시간 활용이지요. 도심에서 벗어난 연립주택에서 살기 때문에 집을 벗어나면 곧바로 풀꽃들이 반겨주는 골목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냥 걷는 것보다는 요즘 한 철인 풀꽃들을 찾아보기로 하고 카메라를 챙겨들었습니다. 길을 따라가면 곁으로 밀감밭들이 울타리를 이루고, 그 사이 사이로 연초록의 보리들이 아직은 앉은뱅이 키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맑은 하늘 아래 봄을 시샘하는 꽃샘바람이 서늘서늘하게 불었습니다. 길 옆으로 밝은 보라빛의 작은 꽃송이들을 간들거리는 개불알풀들과, 그 사이 사이로 하얀 별꽃들도 어우려졌고, 양지 바른 곳에는 제비꽃과 민들레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봄은 깊어가는가 봅니다. 그 작은 꽃들도 한 번씩은 담아야 하겠는데, 그네들은 작은 바람에도 고개를 까닥거리기 때문에 쉽게 담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은 아무 소득이 없는가보다라고 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 한 귀퉁이 돌담 아래로 아주 아주 작은 풀밭이 보였습니다.

 

그곳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들개미자리가 보였습니다. 세상구경을 하겠다고 고개를 갸웃하게 내밀고 있는 좁쌀만한 꽃마리 몇 송이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들개미자리는 여러 종류의 개미자리 중에서도 키가 크고 꽃 송이도 제법 큰 편에 속합니다. 아무리 커 봐도 하얀 쌀 한톨 크기 밖에 더 되겠습니까만, 그네들 세상에서는 그나마 제법 우쭐하게 자랑할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아직은 나올 시기가 아니지만 워낙 남쪽 나라의 봄햇살이 따스해서 성급함을 무릎쓰고 벌써 나왔겠지요.

 

너무 반가워서 잠시 벗하기로 했습니다. 저 맑음, 저 깨끗함, 한 점 작은 티도 흠도 없는 저 작은 꽃 앞에서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저 작은 아름다움을 앞에 놓고 글을 적으려고 하니 왜 정신이 먹먹해지는 걸까요? 삶의 부끄러움들이 작은 쓰나미가 되어 밀려들까요? 맑음과 깨끗함, 마음으로는 꿈을 꾸지만 살아가는 삶을 돌이켜보면 그렇게 살 수가 있었겠나요? 속으로 감추고 있는 죄들이 얼마나 많이 있다고요. 사람은 몰라도 하늘 높은 곳에 계시는 분이, 이 놈 하면서 야단치면 숨을 곳도 없겠지요. 다행히 하늘 저 높은 곳에 계시는 분은 마음이 워낙 넓으신 분이라서 엔간하면 덮어 주면서 허허 웃으시겠지요. 스스로 깨닫고 돌이켜 맑고 곱게 살라고 하시겠지요.

 

사람에게는 두 본성이 있어 서로 싸운다고 합니다. 맑음을 떠올릴수록 맑지 않음은 억눌러야 하겠지요. 그렇지만 억누른다고 억눌러지겠습니까? 어딘가로 출구를 찾아서 배출 혹은 해소되어야 하겠지요. 이것을 분석하여 이론을 발전시키고 활용한 이가 유대인의 천재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라고 하는 분이었습니다. 여기서 그분의 이론을 정리할 필요는 없겠지요. 저도 제 삶의 살아온 혹은 살아가는 날들을 반추해보면 그분의 이론에서 상당한 타당성을 인정하게 됩니다.

 

갑자기 이 맑은 꽃송이 앞에서 불교의 '염화시중'이라는 글귀가 떠오릅니다. 옛날 석가모니가 연꽃 한 송이를 내밀었을 때 아무도 그 의미를 알지 못했지만, 가섭이라는 제자만이 스승의 뜻을 깨닫고 살며시 미소를 머금었다지요. 진흙밭에서 맑고 고운 연꽃이 피어오르듯, 사람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말이야 좋지만 깨달음도 쉽지 않고 사는 것은 더더욱 어려울 듯 합니다.

 

종교는 다르지만 한 옛날 이 문제 앞에서 큰 씨름을 했던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신약성경에 나오는 바울이라는 분이 이렇게 외쳤지요.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신약성경 로마서 7장의 몇 구절이었습니다. 한 옛날 대학 강의실에서 머리가 허옇게 세어가는 교수님이 이 구절들을 인용하면서 심리학 강의를 진행했었지요.

 

곱고도 단순한 풀꽃들 앞에서 가끔씩은 깨달음을 찾으며 심각해지기도 하는 풀빛세상이었습니다.

 

 

꽃마리는 돌돌 말린 것을 찾아야 하겠지만, 그 앞서 꽃을 막 피워 올릴 때의 곱고 맑은 파스톨 색감은 또 다른 흥분을 안겨주게 됩니다. 좁쌀만한 꽃송이 속에 숨겨 놓은 신비는 창조주의 작품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