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68 / 변산바람꽃

풀빛세상 2011. 3. 10. 13:54

 

 

  

 

참 오래간만에 풀꽃이야기를 써 보려고 합니다. 벌써 삼월 초순도 지나고 중순께로 접어들고 있네요. 지난 겨울은 무척이나 추웠습니다. 눈도 많이 왔고요. 그래서 기다리던 꽃소식이 많이 늦어지게 되었습니다만, 이제 봄을 알리는 꽃들이 다투어 피기 시작했으며, 야생화를 찾는 분들의 마음도 바빠지고 있습니다.

 

예년 같으면 2월 중순께가 지나가면서 복수초 변산바람꽃 노루귀 흰털괭이눈 등등의 꽃들이 하얀 눈을 살포시 덮어 쓰고, 혹은 눈을 녹여가면서 앙증맞고도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지요. 그 모습을 보면서도 가슴 설레지 않을 사람들도 있겠습니다만, 꽃을 찾는 사람들은 그 작고도 고혹적인 모습에 밤잠 설치면서  내일은 하늘이 맑을까 흐릴까 계산을 하고, 옆에 있는 옆지기의 눈치를 흘끔흘끔 살피기도 하지요. 바쁜 세상에 웬 엉뚱한 일에 시간 뺏기느냐는 작은 한 마디에도 가슴이 쿵쾅 내려앉으며 조심스레 장비를 챙기고 휑하게 도망가듯 달려가게 됩니다.

 

그렇게 설렘 가운데서 기다렸어도 올해에는 하얀 눈을 살포시 덮어쓰고 있는 복수초나 변산 아씨들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쉬움이 많이 남았지요. 그런 가운데 쌀쌀한 바람이 약간 피해가는 오목하고도 양지 바른 곳에 변산 아씨들이 맑고도 밝은 얼굴로 맞아주었습니다. 심장박동이 빨라지지만 조심스레 호흡을 고르고, 때로는 가쁜 숨을 멈추어 가며 땅바닥에 완전히 엎드려야 합니다. 사진기도 땅에 완전히 내려놓고요. 뷰파인더를 보면서 숨을 고르고, 초점을 맞추고, 이렇게 한 컷 두 컷 찍다보면 시간은 왜 이리도 빠르게 지나가는지요. 산중의 해는 벌써 뉘엿뉘엿 산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합니다.

 

혼자서 정신없이 사진을 찍던 날, 급하게 핸드폰을 꺼내어 꽃친구님에게 문자 메시지를 날렸습니다. 변산아씨가 피었습니다. 혼자 보기 아까워서요. 득달같이 달려온 꽃친구님의 환한 얼굴이 그 어느 때보도 밝아보였지요. 그때가 이월의 하순 어느 날이었습니다. 이제 삼월의 다사로운 햇살이 온 누리를 비추면서 한라산 높은 곳에 남아 있는 눈들을 녹여내고 있습니다.

 

변산바람꽃, 아마도 변산지역에서 처음 발견되었기 때문에 지역의 이름이 앞에 붙었겠지요. 이곳 남쪽의 섬나라 탐라국에서도 만날 수 있고요, 그 외에도 이곳 저곳에서 찾아 만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왜 바람꽃이라고 했냐고요. 저도 그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종류의 바람꽃들이 있습니다. 너도바람꽃, 세바람꽃, 만주바람꽃, 홀아비바람꽃, 남방바람꽃, 꿩의바람꽃 등등...... 이런 꽃들이 지역과 계절을 바꾸어 가며 이곳 저곳 돌려피면서 세상을 환하게 밝히고 있겠지요. 

 

 

변산바람꽃을 찍기 위해서는 땅에 완전히 엎드려야 합니다. 원체 작은 녀석이 낙옆을 뚫고 올라오기 때문에 어떤 때에는 불가피하게 주변의 낙옆이나 잔가지들을 정리해야 할 때도 있고요, 때로는 사람의 발자국에 밟히는 변산 아씨들이 있기도 하고요, 때로는 사진을 찍노라고 눕다보면 그 아래에서 눌려 찌그러지는 꽃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이럴 때마다 꽃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요. 꽃 세상 꽃 나라의 주인들은 꽃들인데 사람들이 찾아가서 횡포를 부릴 때마다 그네들은 얼마나 힘들까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겠지요. 우리는 아름다움을 찾는 사람들이라고, 우리는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그러나 그 말이 얼마나 인간중심주의적이요, 우리도 모르게 제국주의적인 사고에 익숙해 있는지를 다시 한 번 곱씹어 보며 반성해야 할 것 같습니다.

 

찬 바람 속에서도 작은 꽃 나라 꽃 세상의 아름다움에 흠뻑 젖는 풀빛세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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