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69 / 제주수선화

풀빛세상 2011. 3. 14. 15:51

 

 

   

 

- 수선이란 중국명이며 하늘에 있는 것을 천선(天仙), 땅에 있는 것을 지선(地仙),

그리고 물에 있는 것을 수선이라고 하였다. -

 

'수선화의 속명인 나르키수스(Narcissu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시스(나르키소스)라는 청년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나르시스는 연못 속에 비친 자기 얼굴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물 속에 빠져 죽었는데, 그곳에서 수선화가 피었다고 한다. 그래서 꽃말은 나르시스라는 미소년의 전설에서 '자기주의(自己主義)' 또는 '자기애(自己愛)'를 뜻하게 되었다.' 네이버 백과 사전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수선화는 전 세계적으로 약 60여종 1만 8천여 품종이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수선화가 있는데, 그리스 신화의 시절에 물에 비쳐 한들거렸던 아름다운 수선화는 어떤 종류 어떤 품종이었을까요? 무척 아름답고 맑고도 아름다운 꽃이 아니었을까요? 일찌기 영국의 계관시인 워즈워드는 이렇게 읊었습니다. 

골짜기와 언덕 위를 하늘 높이 떠도는 구름처럼 /  외로이 헤매다가 나는 문득 보았네. / 

수없이 피어난 황금빛 수선화가 / 호숫가 나무 아래서 산들바람에 / 한들한들 춤추는 모습들을.....

 

워즈워드가 호숫가 나무 아래에서 보았던 수선화는 황금빛이었네요. 황금빛의 수선화가 호숫가에 좌악 깔려 산들바람에 한들한들 춤추는 모습을 보았으니 얼마나 흥분되었으며,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옛날 그리스의 호숫가에 피었던 수선화도 황금색이었을까요? 그런데 저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아마도 맑고 고운 흰색의 수선화가 아니었을까 상상의 나래를 펼쳐봅니다.

 

남쪽 나라 탐라국 생활도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겨울이래야 육지의 봄날씨가 계속되는 곳에서 꽃들도 쉽게 만날 수 있지요. 그 중 양지바른 따스한 곳에서 고개를 포옥 숙이고 피어있는 수선화를 보게 됩니다. 3월이 시작되니 지나가는 길가 혹은 텃밭의 귀퉁이에서  무리지어 있는 하얀색의 수선화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동안 그 꽃을 찍을 생각을 별로 해 보지 않았습니다. 짙은 초록의 줄기 위에 하얀색의 꽃들이 소박하게 달려 고개를 숙였으니 눈에 확 띄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런 꽃들 중의 하나인가 생각했을 뿐이었지요.

 

어찌 어찌 하다가 수선화에 카메라를 들이대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빠져드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쩜, 이렇게 맑고 곱고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숨겨진 아름다움을 그동안 보지도 느끼지도 못했구나. 스스로 반성하며 미안한 마음을 가질 뿐이지요. 그러면서 정성을 다해 한 컷 한 컷 담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꽃송이 그 자체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한국에는 두 종류의 수선화가 자생한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았습니다. 제주도에는 제수수선화, 그리고 거문도에는 금잔옥대라고 하는 수선화가 자라고 있습니다. 둘 다 육지에서 격리된 곳이요, 특정한 수선화 한 종류씩만 자라고 있으니 그 자생의 유래가 사뭇 궁금해지기는 합니다. 어쩌다가 바닷물에 떠밀려 왔을까요? 지나가던 상선들이 머무르면서 퍼뜨렸을까요? 무슨 말 못할 사연들을 지니고 있을까요? 둘 다 섬지역의 습하고 양지바른 곳에서 바다를 향하고 피었으니 말 못하는 식물일지라도 말할 수 없는 깊은 사연이 있을 것도 같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제주도의 대정지역에 귀양와서 살았던 추사 김정희 선생님(1786~1856)이 사랑했던 꽃이라고 합니다. 그분이 영의정 권돈에게 보낸 글에서 이렇게 적었답니다. 

'수선화는 정말 천하의 구경거리다. 여기 제주에는 수선화가 없는 곳이 없다. 수선화가 피는 정월 그믐에서 3월에 이르러는 산이나 논둑, 밭둑 할 것 없이 수선화는 희게 퍼진 구름 같고 새로 내린 봄눈 같다'.

 

희게 퍼진 구름 같고 새로 내린 봄눈 같이 많이 피었던 수선화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만, 옛날 그 시절을 살지 않았으니 선명하게 떠오를 리야 있나요? 아마 추사 선생님이 유배생활을 하던 그 시절에는 무척 흔했겠구나, 다른 꽃들도 귀했던 그 시절에 겨울의 추위를 이기며 봄을 알리는 하얀 색의 꽃이 집 마당 귀퉁이마다 심어졌고, 길가의 모퉁이마다 무리를 지어 피면서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겠구나 상상해 볼 뿐이지요.

 

 

제주수선화를 보면서 이런 모습이 떠오릅니다. 하얀 브라우스에 노란색의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그 위에 단정한 윗도리를 걸친 해맑은 아가씨, 혹은 여고생, 아니면 하늘 위를 날아가는 비행기 안의 스튜어디스.... 누구라고 해도 상관은 없겠지요. 소박한 듯 수줍은 듯 그러면서도 맑고 곱게 웃고 있는 건강미인을 떠올려봅니다. 어쩌면 거칠고 힘든 세월 속에서 꿋꿋하게 살아왔던 어머니들의 처녀적 그 모습일까요? 아니면 가족을 맞이하며 환하게 웃는 어머니(아내)의 그 모습일까요? 이런 저런 모습을 상상하면서 맑은 꽃송이만 화면 가득하게 담아보았습니다.

 

 

위의 사진은 추사 선생님이 살았던 대정 지역의 산방산 옆머리에 무리지어 피어있는 수선화입니다.

아랫 사진은 거문도에서 자생한다는 금잔옥대 수선화입니다. 꽃이 아름다워 이곳 저곳에 옮겨다 심었겠지요. 여섯 개의 꽃받침 한 가운데 황금색의 잔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저 잔에 맑은 차를 한 잔 담아 마시면 신선주가 될까요? 다같이 하얀색 꽃받침에 노란색 꽃을 피우고 살짝 고개를 숙였지만 제주수선화는 소박함이 그 멋이라면, 금잔옥대는 은근한 사치로움이 그 멋으로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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